박사과정을 돌아보며: 석사 2

석사 2: 고민, 준비와 새로운 시작

2009.9 – 2010.8

답답함과 부끄러움

별다른 연구성과 없이 어느새 두 번째 가을을 맞이했다. 시간은 다가오고, 해놓은 것은 없고, 12월이면 박사과정 지원을 해야 하니 심리적 압박이 컸다. 계속되는 연구 프로젝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익숙해졌다. 내가 맡은 보조 역할을 나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조금씩 길이 보이니까 스스로 한계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학부 때 합창단을 하면서 노래는 별로 늘지 않고 귀만 까다로워져서 스스로 소리가 엄청나게 거슬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사람과 컴퓨터를 동시에 다루는 HCI 분야의 특성상 말과 논리, 프레이밍이 다른 CS 분야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기존 방법보다 성능이 x % 높아졌다는 식으로 딱 떨어지는 연구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많은 논문은 마치 소설처럼 흡입력 강한 도입부로 시작해 다양한 이론과 디자인과 기술과 실험을 버무려 내놓은 잘 차린 고급정식 같았다. 셰프로 치면 당근만 썰던 나에게는 고급정식 같은 논문들이 복잡하고 멀어 보였다.

연구 미팅에서는 생각과 아이디어를 제대로 말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너무 답답했다. 머릿속에 분명 생각은 있는데 풀어내는 것이 어려웠다. 나만의 관점을 드러내면서 미팅과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어려웠다. Scott은 미팅에서 날카로운 질문들로 나를 몰아붙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지도했고, 나는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많이 배우기는 했지만, 점점 주눅이 들었다. R과는 같이 일을 하면 할수록 성격이 점점 안 맞아서 힘들었지만 나는 을이었고, 이 연구를 떠날 용기가 없었기에 꾹 참고 일했다. 운이 좋아 박사를 이곳에 남아서 할 수 있다 해도 과연 행복할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20~30명 정도 규모의 HCI Group에 native speaker가 아닌 사람은 2~3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정말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Mac을 사용했다. 한국서 들고 온 내 IBM x61 랩탑과 윈도우즈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사고방식과 기준을 버리고 이들의 문화와 방식에 녹아들어야겠다는 다짐을 여러 번 했다. 몇 년이 지나서야 나의 한국적인 관점이 다양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어색한 영어발음도 부끄러웠다. 아침마다 30분 정도씩 논문을 발음에 신경 쓰면서 소리 내 읽었다.

HCI 분야에서 가장 크고 좋은 학회라는 CHI 학회 데드라인이 9월에 있었다. 데드라인 며칠을 앞두고 새벽 3시가 넘도록 연구실에서 나는 코딩을 하고, 그 옆에서 R과 Scott은 논문 도입부를 뜯어고치고 또 고쳤다. R과 Scott과 나는 엄청난 시간을 쏟아가며 논문을 준비했지만 결국 시간부족으로 반쪽짜리 논문을 제출했고, 당연히 논문은 떨어졌다. 이 논문이 합격하고 박사를 지원했다면 엄청나게 탄력을 받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Scott의 첫 박사 학생으로 졸업을 하고 Berkeley 교수로 가게 된 Bjoern Hartmann은 CHI 데드라인 날 연구실에 나와 두 개의 논문을 벌써 제출 완료했다며, 멘붕이 온 우리 옆에서 낮잠을 자는 만행을 저질렀다. Bjoern의 논문 두 개는 모두 합격했다. Bjoern은 Scott의 주니어 버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 면에서 비슷했다. 특히 날카로움, 디자인 관점의 강조, 섹시한 연구 주제를 찾아내는 안목이 아주 닮았다.

크라우드소싱, 그리고 Rob

이 무렵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던 주제는 바로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이었다. 많은 사람이 조금씩 기여를 하여 큰 문제를 풀어낸다는 개념이 매력적이었고, 특히 컴퓨터도 사람도 혼자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크라우드의 힘으로 풀 수 있다는 human computation 개념이 너무 좋았다. 처음 human computation을 접했을 때 HCI의 정수가 이런 게 아닐까 하며 소름이 돋았다. 이 분야를 개척한 Luis von Ahn의 image labeling game, GWAP (Games with a Purpose) 연구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구자 중 한 명이다. 연구 분야로서 크라우드소싱은 이제 막 HCI 관점에서 연구자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신생 분야였다. 내가 하던 연구에도 크라우드소싱을 적용해서 두 웹페이지 디자인 요소 사이의 관계를 빠르고 값싸게 많이 모을 수 있었다. 이 데이터를 제대로 모을 수 있게 크라우드를 위한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것이 연구에 있어 중요한 이슈였다. 당시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던 크라우드소싱 논문들이 너무나도 재밌었고, 이걸 원래 관심 있던 창의성 지원과 연계해서 발전시켜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Scott은 별로 크라우드소싱에 관심이 없었고, PARC에 있던 Ed Chi와 MIT CSAIL의 Rob Miller 교수 연구실에서 재밌는 연구들이 막 나오고 있었다.

여름이 시작되던 무렵, MIT Media Lab 박사과정이던 태미누나를 통해 Michael Bernstein을 소개받았다. 태미누나는 프롤로그에 언급했던 것처럼 안면도 없이 내가 다짜고짜 유학 관련 질문을 퍼부었을 때 친절하게 도와주셨던 분이었다. 내가 MIT 박사과정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드릴 기회가 있었고, 누나는 고맙게도 MIT의 컴퓨터공학과라 할 수 있는 CSAIL의 박사과정 학생인 Michael을 소개해 주었다. Michael은 Stanford 학부 졸업생으로 MIT에서 Rob과 함께 HCI 연구를 하고 있었다. 반듯하고, 배려심 있고, 굉장히 서글서글하고 친절한 첫인상이었다. 그야말로 스타 학생으로 좋은 연구를 계속 터뜨렸고, 현재는 모교로 돌아와 Stanford 교수이다. Michael은 이후 나의 박사과정 전반과 연구방향에 있어 많은 도움과 영향을 주었다. 첫 만남에서 박사과정과 크라우드소싱 연구에 관심이 많다고 했더니 자기의 지도교수 Rob에게 나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Michael은 나와 Rob에게 소개 이메일을 보냈다. 나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내가 하던 현재 연구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고, 내가 박사과정에 관심이 있다는 말까지 넣어주었다. 처음 만나는 외국인 학생에게 이 정도의 친절을 베풀어준 것이 지금 생각해도 의아하면서 또 고맙다. 곧이어 Rob의 운명적인 첫 이메일이 왔다:

“Hi Juho,
Nice to meet you! Your work sounds very interesting. (후략)”

UIST 2009

여름에 하던 프로젝트에 진척은 딱히 없었고 CHI 논문도 떨어졌지만, 내가 맡았던 부분을 짧게 정리해서 제출했던 포스터가 HCI 분야의 최고 학회 중 하나인 UIST에 통과됐다. 연구에서는 미국 와서 처음으로 얻어낸 눈에 보이는 성과였다. HCI 학회에서의 포스터는 논문보다 무게감도 현저히 낮고 실질적인 연구업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UIST라는 “큰물”을 경험해볼 기회가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포스터 통에 고이고이 만든 포스터를 담아 들고 설렌 마음으로 2009년 10월, 학회가 열리는 Victoria 섬이 있는 Canada 땅을 밟았다. 학회는 그야말로 올스타들이 맹활약하는 꿈의 무대였다. 내가 동경하던 Rob의 그룹에서는 스크린샷으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Sikuli라는 시스템에 관한 논문을 써서 best paper를 받았다. 포스터 세션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드디어 Rob과의 첫 대면을 했고, Rob은 내 설명을 듣고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재밌는 연구인 것 같고 자기네 랩에서 하는 연구와 잘 맞는 것 같으니 박사지원을 꼭 해보라고 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용기도 없고 박사과정 학생도 아니니 사람들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다들 이미 친해 보였고 자신의 연구가 확실해 보였다. 200명 남짓 되는 참가자 중 한국인은 5명 정도였다. 한국인 중에는 배석형 교수님이 논문 발표를 하셨는데, 정말 멋진 스케치 툴 연구를 소개하면서 라이브로 시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분들과 리셉션에서 만나 인사도 나누고 치열한 학회 중 잠깐이나마 편한 시간을 보냈다.

박사 지원과 결과

2년 동안 유학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던 삼성장학회는 자신감이 바닥을 치던 나에게 정말 감사하게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다. 박사과정 5년 동안 지원을 받게 되었다. 진도와 실적이 미미했던 연구, 떨어지는 자신감과 Scott과 R을 대하는 어려움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Rob과의 만남, 장학생 합격으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추천서는 연구를 같이했던 Scott과 Cliff, 그리고 시각화 수업을 들었던 Jeff에게 부탁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엄청난 라인업이다.

지원 마감인 12월이 다가오면서 Scott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직접 지원할 학교목록을 봐주면서 학교별로 특색을 알려주었고, SOP (Statement of Purpose: 연구/학업계획서) 역시 꼼꼼하게 봐주었다. SOP 도입부를 4가지 다른 버전으로 써오라고 했고, 그중에 가장 괜찮은 걸 골라주었다. 데드라인 며칠 뒤에야 Scott은 자신의 추천서를 제출했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교수 추천서는 데드라인이 좀 넘어도 큰 상관이 없다. 그리고 “1월 3일”에 교수들에게 내 소개와 함께 당신과 일하고 싶어서 박사과정에 지원했다는 “3줄짜리” 이메일을 쓰라고 했다. 정말 신기하게 대부분 교수가 내 원서를 살펴보겠다는 답을 주었다. 그러면서 Scott은 CS 탑4 학교 (MIT, Stanford, Berkeley, CMU)는 50:50, 나머지 학교는 잘 될 거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니,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저렇게 콕 찍어서 이야기를 하나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탑4 중 2개, 나머지 학교는 모두 합격을 했다. Stanford는 떨어졌다. Scott은 내부 석사를 박사로 진학시키는 것은 웬만하면 학과에서 피하려는 일이고, 내가 외부에서 이런 스펙으로 지원을 했으면 분명 합격을 했을 것이라며 위로(?)를 해주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었을 것이고, 내 생각에는 Scott도 나처럼 둘이 계속 같이 연구를 하기에는 뭔가 잘 안 맞는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오히려 Stanford가 선택지에 있었다면 선택이 더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하다. 당시 어드미션 포스팅.

학교 선택

그토록 바라던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연애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된 지희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다. 나에게는 Stanford 근처에 남아있을 수 있는 박사과정의 옵션이 없었고, 지희도 앞으로 3년은 Stanford에서 연구를 더 해야 박사가 끝나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롱디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학교가 박사과정 합격 학생들을 위한 visit day 행사를 열어 학과소개 및 교수,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학교 홍보를 했다. 3월에는 MIT, CMU, UW, Harvard의 visit day에 참석했다. MIT에 아무래도 마음이 가기는 했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HCI 사람들에게 꿈의 학교인 CMU 역시 너무나 좋아 보였다. CMU는 HCI를 위한 별도의 학과라 할 수 있는 HCI Institute가 있을 정도로, 나오는 HCI 연구의 양과 질에서 압도적인 학교였다. 내가 간다면 지도교수는 Brad Myers 교수가 될 상황이었는데, HCI에서 손꼽히는 대가로 Rob의 지도교수이자 Scott의 할아버지 지도교수 (지도교수의 지도교수)였다. 홈페이지를 보니 제자들이 웬만한 좋은 학교에 다 교수로 가 있었다. Brad는 정말 직설적인 사람이었다. MIT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더니 자기와 일할 수 있는데 왜 자기 제자와 일을 하려 하냐고 말했다. 또 내가 와서 바로 할 프로젝트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이와 다르게 MIT를 방문했을 때 Rob은 나한테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고 어떤 연구를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주제와 방향은 내가 잡는 것이고 자신은 조언과 피드백을 줄 것이라고 했다. Harvard의 Krzysztof Gajos 교수도 내가 좋아하는 연구를 하는 젊은 교수라 관심이 있었는데, 앞으로 창의성 연구를 본격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했다. Rob과 Krzysztof는 나에 관해 대화를 나눈 뒤 나한테 이메일을 보내서, 내가 MIT와 Harvard 두 학교 중 어느 곳으로 와도 상관없는데, 나의 관심사나 성향을 봤을 때 Boston이 정말 나에게 잘 맞을 것이며, 오게 된다면 둘이 나를 공동지도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 이메일을 읽는 순간 나는 학교 결정을 마쳤다.

Stanford 생활 마무리

석사에서 박사로 넘어가면서는 연구 인턴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IBM Research와 Google에 지원해서 운 좋게 합격을 했고, 당시 HCI 연구그룹이 크고 활발하던 IBM Research로 선택했다. 학교를 옮기게 되면서 취업 비자 처리가 좀 복잡하게 되었는데, 그 처리가 오래 걸려 3주 정도 출근을 못 하고 집에서 놀아야 했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산 하나가 통째로 연구소였고, 출근 첫날 각종 야생동물을 마주쳤을 때의 대처법을 교육받았다. IBM에 다른 HCI 인턴으로는 한국서 지원 당시 이메일로 큰 도움을 주었던 CMU의 김선영 누나가 있었다. 누나는 매일같이 저녁에도 남아 연구를 했고, 역시 인턴십 프로젝트로 좋은 논문을 썼다.

미래가 결정되고 나니 근 2년 만에 처음으로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그새 정이 많이 들었던 이 동네 친구들과 야외 바비큐, 맥주 파티를 정말 원 없이 즐겼다. Stanford에서 보였던 부족하고 미숙한 모습을 뒤로하고,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아쉽게도 이후 5년 동안 이 정도의 여유와 안정은 찾아오지 않았다. 2010년 8월, 열흘간 차를 몰고 3,000마일을 달려 Stanford에서 Boston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6년의 롱디가 시작되었다.


“박사과정을 돌아보며” 시리즈

Author: mcpanic

어떻게 하면 보다 사람냄새 나는 기술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Human-Computer Interaction (HCI) 연구자 / 컴퓨터과학자 / 새내기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