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기

미국도, 학계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못볼꼴 볼수밖에 없는구나 하는 체념이 들면서, 이런 것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아직도 마냥 어려 보인다. …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법에 있어서 그들의 방식을 조금이나마 익혀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고무적이다.

마이너스

바쁘게는 살았으나 새롭게 배워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연구는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어간다. 바쁜 것도 왜 바쁜지 잘 모르겠고, 시간은 그냥 스르르 녹아 없어져 가는 것만 같다. 박사 시작을 하면서는 기초부터 다시 탄탄히 쌓아야겠다는 다짐을 했건만, 어설픈 성과에 대한 욕심은 자꾸 기본을 무시하고 지름길을 찾으려는 어리석음으로 나타난다. 나의 지식 체계를 보다 공고히 다지고 생각의 넓이와 깊이를 확장시켜야 하겠지만, 보다 단기적이고 편한 것만 보인다. 막연히 생각했을 때에는 참신하고 흥미로울 것 같던 연구 주제도, 파고들어 갈수록 녹록치 않다. 웬만한 것들은 남들이 이미 해놓았고, 내가 새롭다고 느끼던 그 무언가는 사실 실체도 없는 것이었다. 괜찮은 연구주제일것만 같은 막연한 ‘감’이 기존의 기라성같은 연구를 마주하니 사라진다. 미국도, 학계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못볼꼴 볼수밖에 없는구나 하는 체념이 들면서, 이런 것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아직도 마냥 어려 보인다. 생각만 하지 말고 무언가 행동에 옮기고 실질적인 일을 하기는 해야겠는데, 여전히 기초는 없고 아이디어는 뻔해 보이고 그러면서도 서두는 것 같아서 초조하다.

플러스

주위의 열심히 또 잘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경쟁심이나 주눅드는 마음보다는 그들처럼 되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래도 다행이다. 여러 의미의 좋은 롤 모델이 많아서 자극을 받게 된다. 석사 때는 느끼지 못했던 ‘조직’에서의 안도감 역시 큰 힘이 된다. 나의 여기있음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나를 동등한 연구자로 대해준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다.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법에 있어서 그들의 방식을 조금이나마 익혀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고무적이다. 나만의 관점으로 대화에 기여하는 빈도가 늘어가고 있는 것도 같다. 주위에 쏟아져 들어오는 지적 자극들이 소화하기에 버겁지만 기분 좋다. 학부때, 아니 컴퓨터공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그 순간부터 꿈꿔오던 모습이 매일매일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환경에 있어서 내가 더 바랄 것은 없다. 그동안 늘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옮겨다니고 시험을 보고 했던 것인데 말이지. 이제 주위에 불평할 것도, 하고 싶지도 않다. 정말 나만 잘하면 되는 너무나도 속편하고 깔끔한 상황이다. 낙오되면 어쩌나 두려움이 엄습해 올때는 어두운 방안에서 혼자 몸서리치다가도, 왠지 이렇게 계속 하다보면 뭔가 이룰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설렌다.

결론적으로, 플러스 쪽 글이 몇 글자 더 기니까 난 행복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