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mall Step Forward 유학, 연구, HCI, 정보와 사람, 창의성

28Apr/102

CHI2010 후기

CHI2010 은 HCI (Human-Computer Interaction)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회이다. 지난 4월 10일부터 15일까지 조지아 주의 아틀란타에서 열렸고, 총 2500여명의 사람이 모였으며, 약 300개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번 CHI 는 작년 가을의 UIST 에 이어 (당시 후기는 ‘UIST 학회를 다녀와서’ 포스팅에) 두번째로 간 미국 학회였다. 일상에 와닿는 주제들이 많고 비교적 이해가 쉬운 연구가 많은 HCI 이다보니 CNN, BBC 등의 메인스트림 언론에도 학회에 발표된 몇 가지의 연구가 소개되기도 했다. (이곳 참고)

 

Picture 547

Student Volunteer

나는 이번 학회에서 Student Volunteer 의 임무를 맡아 일을 했다. Student Volunteer 는 수백불 정도 되는 등록비를 면제받고 20시간 동안 학회가 제대로 굴러가는 데에 필요한 다양한 일을 하는 흥미로운 자리이다. 주로 싼값에 학회에 오는 대신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170여명의 대학원생들이라고 보면 될듯. 의외로 5:1이 넘는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하고, 기본적으로는 추첨을 하지만 커미티 (논문심사 등을 총괄하는, 학회를 위해 임시로 구성되는 연구자 모임) 에 소속된 교수들에게는 공짜 volunteer spot 이 하나씩 주어진다고 한다. 우리 교수님에게 있는 spot 을 선착순으로 냉큼 찜해서 나는 편하게 오게 되었다. 아래의 빨간 옷을 입고 세션 모니터링, 키노트 강연 준비 도우미, 문지기 등의 다양한 업무를 하면서 몸은 꽤나 힘들었지만 그래도 학회가 굴러가는 모습을 어느 정도 속속들이 체험할 수 있었다.

 

Picture 379

 

한국사람들

작년 UIST 에는 한국인이 통틀어 7명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무려 100명에 가까운 한국인들이 학회를 찾았다. 미국에서 HCI 연구를 하는 한국인들도 많이 볼 수 있었지만, KAIST를 필두로 한 우리나라 학교와 삼성, LG 등의 한국 기업에서 많은 분들이 온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KAIST 산업디자인과에서만 20~30명 정도의 사람이 온 것 같았다. 서울대 CS 쪽에서도 새로 교수님이 오신 이후 visualization 관련 연구가 활발한 것 같았다. 두 편의 full paper 가 있었다. 하루 점심에 한국 HCI 모임을 했는데, 80명 가량의 사람들이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한국의 HCI

한국에서 오신 교수님/학생들과 한국의 HCI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인상깊었던 점 중 하나는, 산업계에서의 높은 수요를 바탕으로 학교들도 HCI 연구 역량를 보다 키우고 있다는 것. 그러나 아쉬웠던 점은 그 역량이 대부분 디자인과 사용성, 모바일과 UX 등의 일부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 특히 내가 하고 있는 Computer Science 기반의 소프트웨어 툴이나 인터페이스, 그리고 Visualization 에 관한 연구는 한국에서 많이 생소하다고 한다. 분야의 태생적 특성 상 여러 분야의 균형과 조화가 필수적인 HCI 의 한 축인 이른바 system 연구를 하는 학교와 그룹이 보다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구동향

HCI 는 사실 너무 넓어서 어떤 세션은 들어가도 무슨 연구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고, 관심사가 전혀 달라 듣기 힘든 때도 있었다. 수확이라면, 최신연구동향을 알게 된 것과 내가 연구하는 분야가 HCI 전체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갖고 있는가를 보았던 것. 가장 HOT 한 연구 트렌드 두 가지는 input technology 와 social computing 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CMU 박사과정 학생인 Chris Harrison 의 Skinput 은 사람의 몸을 입력 수단으로 활용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장 많은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Input technology 연구는 기존의 터치, 테이블탑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느낌이다. 또 하나 큰 흐름이었던 social computing 은 주로 Facebook 과 Twitter 를 이용한 다양한 발표를 비롯해, 사람들 사이의 정보와 관심의 공유를 촉진하는 다양한 기법들을 제시하였다. Social computing 은 아직도 새로운 연구주제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앞으로 당분간은 흥미롭고 다양한 연구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SIG

다양한 연구관심사에 따라 워크샵 또는 SIG (Special Interest Group) 미팅이 논문발표와 함께 진행되었다. 나는 그 중 관심있는 분야인 End-User Programming SIG Meeting 에 참석을 했다. 이 세부분야의 권위자 및 학생들이 얼추 다 모이는 자리여서 최신연구동향을 알고 사람들 얼굴을 익히기에 좋은 자리였던 것 같다. 재미있었던 점은 SIG 의 진행방식이었다. 50여명의 참가자를 기존 멤버와 새로운 멤버로 나눈 뒤, 두 줄로 서로를 마주보면서 선 다음 (축구경기할 때 양팀 인사하는 것처럼) blind date 방식으로 한 사람당 2분씩 1:1 대화를 나누는 것. 25명의 사람과 각자의 연구관심사에 대해 1시간여동안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

 

Twitter 시대

바야흐로 Twitter 시대다. #chi2010 와 각 세션 별 해쉬태그와 통해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스마트폰, iPad, 노트북에서 각 세션의 흥미로운 감상과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해쉬태그에 달린 트윗들만 죽 읽어도 어떤 발표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연구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질타(?)를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유용한 정보와 더불어 간단한 debate 가 벌어지기도 했다. 앞으로 이런 흐름은 보다 가속화될 것이고, social computing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분야인만큼 그 활용에 있어서도 앞서나가는 학회가 되면 좋겠다.

 

후기

엄청난 규모와 다채로운 행사들, 대가, 교수, 학생과 산업계 인사들, 다양한 분야의 최신연구 등으로 가득찬 CHI 학회는 어찌 보면 축제의 장이었다. 저널보다 학회에 좋은 연구가 집중되는 분야의 성격상 사람들과의 교류와 정보와 연구동향 습득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바쁠만큼의 충분한 가치를 주는 학회였다고 생각한다. 이 청중을 대상으로 내 연구결과를 선보일 기회가 여러번! 올 수 있도록 열심히 연구해야겠다.

 

p.s. 학회의 꽃은 아무래도 사람들과 친해지고 정보를 공유하는 Socialize 가 아닐까 싶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 좀더 자세하게 써볼 생각이다. 지난 UIST 학회 후기를 오랜만에 읽어보니 이 때도 socialize 하는 것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4Apr/102

책임 있는 연구

내가 하는 연구가 엉뚱한, 악의를 가진 집단에 의해 악용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정도로 임팩트가 있다는 건 어찌보면 그만큼 좋은 연구였다는 뜻일테지만 ㅎㅎ) 그나마 다행인 것은 HCI 는 태생적으로 연구 결과의 사회적인 함의라든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민한다는 것. 그래서 더 마음에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막상 연구 속에 빠지기 시작하면 보다 윗단에서 판단해야 할 이런 것들은 보이지 않기 시작할 것 같다. 조금이나마 여유 있을 때 이런 생각들을 조금이라도 해놓으면 무의식 중에라도 초심을 잃지 않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가 만든 기술이나 새로운 툴, 인터랙션 기법 등이 사람들이 열광하는 제품에 포함되고 그들의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에 도움이 된다면 큰 보람을 느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좀더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는 연구를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저렴하고 손쉽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일. 논문을 제출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소프트웨어라면 오픈소스 공개를 하고 다른 곳으로 보다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패키징을 하는 등의 추가적인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쓰이지 않는 기술은 결국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한가지 고무적인 것은 HCI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책임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 장애인들을 위한 보다 편리한 기술이라든가, 기술에 대한 접근 제약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affordable 한 기술이라든가, 점점 메인스트림 연구로 올라오고 있는 ICTD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 and Development) 라든가. 결국 굉장히 보수적인듯 보이는 학계나 연구 커뮤니티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회와의 관계, 그 속의 연구자들의 요구와 연구 방향 등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자들이 커뮤니티가 원하는 것에 맞추어 연구를 하는 도 있겠지만, 반대로 커뮤니티 또한 주위 상황에 민첩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분야 전체가 도태되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존폐 자체가 위협에 빠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HCI 에서는 SIGCHI 같은 곳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 지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연구의 깊이는 없이 커뮤니티가 좋아할 것에만 맞추어서 ‘정치적’ 인 연구만 하는 저렴한 연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더 많은 논문이 나올 수 있고 citation 수가 더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런 연구자의 가치는 사회와 동료들의 엄정한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결국, 연구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에는 – 어쩌면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 주위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가는 깊이있고 끈기있는 자세, 그리고 연구의 사회적 의미와 책임을 잊지 않고 항상 주위를 둘러보며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자세가 함께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T자형 인재의 가치는 유효하다.

 

[참고] T자형 인재에 대해 언급했던 글

2Apr/106

미국에서의 1년 반

미국에 처음 와본건 2006년 10월 Houston 이었다. 회사에서 개발한 제품을 들고 전시회에 출품했었드랬다. 광활한 텍사스 땅에 가방 하나 들고 날아올 때의 설렘과 묘한 도전의식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미국에 두번째 와본건 2007년 11월 LA/SF 였다. 지마켓에서 후원하는 ‘과학탐험대’라는 기회를 통해 10일 정도 서부의 학교와 회사들을 둘러보았다. 병특이 막 끝나고 한창 정신없이 유학 준비를 하던 때였는데, 말로만 듣던 칼텍, 스탠포드, 버클리를 구경하면서 여러모로 놀랐었다. 그리고 밤에 호텔방에서 SOP 의 첫번째 버전을 완성했던 기억. 스탠포드 캠퍼스에 매료되어 이곳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2008년 9월, 드디어 유학길에 올랐다. 꿈과 희망, 불안감과 초조함이 교차했던, 그러나 어쨌든 두근거렸던 비행이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혼자서 살아보는 것이기도 했고, 익숙하던 모든 것을 떠나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막막함. 그 치열한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영어, 문화, 음식, 생활에 대한 두려움. 그러나 막상 도착해서 적응해 나가는 과정은 꽤나 즐겁고 괜찮았다. Sunny California 의 환상적인 날씨, 널찍한 땅에 여유있는 사람들, 최고의 캠퍼스와 수업과 연구환경과 학생들,

어느새 1년 반이 지났고, 이제 여름이 되면 동부로 옮겨 본격적인 연구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동안 참으로 바빴고 열심히 살았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더 열심히 잘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HCI 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배워나갔고, 연구의 목적, 방법, 과정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체험을 했다. 논문을 쓴다는 것과 연구자들의 커뮤니티의 생태계를 알게 되었고, 미약하나마 연구성과와 네트워킹에 있어서도 첫발을 내딛었다. 스탠포드의 그야말로 모든 것이 갖추어진 환경 속에서 양질의 수업들을 들었고, 뛰어난 연구자들과 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실리콘 밸리와 벤처정신을 가까이서 보았다.

아쉬운 것들도 많이 있다. 우선 몸과 마음의 건강이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계속되는 밤샘과 쏟아지는 일들에 끊임없이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했다. 누군가와 경쟁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주위 환경과 내 자신이 기대하는 수준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웠다. 사람들과의 교류 또한 현격히 줄었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로움과 서러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즐거움과 여유와는 거리가 먼 시간들을 보냈다.

이제는 좀더 이곳에서의 시간을 ‘살아보고’ 싶다. 여유를 가지고 이곳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 스탠포드에서의 2년이 단순히 정신없던 석사 과정을 보냈던 시간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