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에서 Socialize 하기
학회에서는 논문발표보다 술자리에 가라는 주옥같은 격언(?)이 있다-_-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다양한 연구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학회인만큼, 그만큼 그들과 친해지고 연구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의미있다는 뜻일 것이다. 중요한 부분인 것은 알겠는데, 문제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겨우 미국 학회에 두 번 참가한 풋내기가 이런 것이 쉽다면 그것 또한 이상하기도 하겠지만… 이번 CHI2010 학회에 다녀와서 (후기는 여기에) 문득 학회에서 socialize 하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Socialize 를 하는 상황들
학회 내내 수시로 벌어진다. 아침과 오후에 있는 30분~1시간씩의 coffee break 는 물론이고 세션 사이의 잠깐의 쉬는 시간, 점심시간. 그리고 공식/비공식적으로 열리는 학회 리셉션과 회사, 학교에서 주최하는 파티, 아이들끼리 몰려가서 노는 밥과 술자리, 그리고 Student Volunteer 파티까지. 이 때마다 흔히 일어나는 광경은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소개하고 그야말로 수다를 떠는 것. 과장 좀 보태서 학회에 갔던 5일 정도의 시간 동안 100번 정도는 자기소개를 했던 것 같다.
왜 어려운가
- 나를 각인시키기 어렵다. 이제 막 박사과정 시작하는 학생으로 아직 내세울 것이 없다. 변변한 연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가들을 보면 흔히 ‘xxx 분야의 대가 yyy’ 하는 식으로 강한 연관을 지을 수 있다. 학생들의 경우 보통 학교와 지도교수로 연관짓는 경우가 많은 듯. 혼자만의 생각일수도 있지만 백인들의 경우 아시아인들의 얼굴을 좀더 잘 기억/구분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 할 이야기가 없다… 연구의 경우 할 얘기가 좀 있다. 그러나 술마시고 떠드는 자리에서 연구 얘기만 할 수는 없는 법. 그렇게 되면 문화적 컨텍스트가 중요하다. 많이 나오는 주제들을 생각해 보면
- 특정 장소에서의 개인 경험
- 문화적 컨텐트 (TV 쇼, 유명인, 시사)
- IT 전반 (애플, 구글, MS, 페이스북, 트위터…)
사람들이 이런 얘기들을 열심히 하는데, 끼기 어려운 경우가 꽤 많다.
- 언어. 단순히 영어의 문제라기보다는 묘사에 필요한 informal 한 단어와 표현들이 난무해서 미묘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오히려 교수들이 학생들보다 대화하기 쉬운 면도 있다. 그들은 보다 표준화된 단어와 표현을 구사하므로. 물론 재미가 더 없기는 하다 ㅎㅎ
- 유머. 내가 우리나라 말로 대화한다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미국은 유머코드가 더더욱 다르다;; 내가 못 웃기는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그들과의 대화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인듯.
- 문화. 즐기고 향유하는 문화가 다르다보니.
- 자신감. 영어,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소심함…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 전략 세우기. 학회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을 미리 생각하고 그들의 연구 등에 대해 공부를 해가는 것이 좋다. 그러면 아무래도 초반 대화는 수월하게 풀릴 수 있다. 꼭 만나보고 싶은 연구자들은 어떻게든 가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 다다익선이 능사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과 인사한다고 그들이 나를 모두 기억하지는 않는다. 적은 수의 사람들과 좀더 깊이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듯. 뻘쭘한 파티 자리에서 나를 반겨주는 소수의 친구를 만들어 놓는 것이 좋은 것 같다.
- 문화 컨텐츠 숙지하기. 미드, 영화, 스포츠 등 대화할 거리가 필요하다 – 보스턴 가면 야구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 표현 익히기. 페이퍼를 많이 읽는다고 되는건 아닌듯. 연구에 대한 이야기는 차라리 편하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대화를 많이 하고 미드, 영화 등에 나오는 ‘일상 표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 질문 많이하기. 나는 외국인이다. 모르는 게 죄가 아니다. 모르는 건 물어보자. 말을 많이하기 어려우면 경청하는 좋은 인상이라도 심어주어야지 ㅎㅎㅎ
- 외국인의 장점 활용하기. 그들이 가지지 못한 독특한 경험이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될 수도 있다. 다르니까 기죽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가 생기는 것이라고 주문을 외우자. 이런 점을 잘 활용하는 몇몇 인도, 유럽 친구들을 보니 조금은 희망이 생겼다.
그래도 중요한 건 내 연구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내 연구의 내실이다. 나의 주관이 뚜렷해야 하고 내 연구의 방향이 분명해야 얻는 것 또한 많아지는 법이다. 연구자들이 모이는 학회인데, 외모나 말빨이 인기의 척도가 아니다. 좋은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관심과 인기가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결국 연구실에서의 외로운 시간들이 헛되지 않음이 학회에서 나타난다.
UIST 학회를 다녀와서
10월 2일~10월 7일까지 캐나다의 빅토리아에서 열린 UIST 2009 학회에 다녀왔다. 논문은 아니고 포스터 발표기는 했지만 처음으로 나의 작업물을 학회에 들고가서 발표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소중한 첫경험을 했다.
UIST 의 포지셔닝
CHI는 너무 크고 온갖 분야의 사람들이 다 모이는 반면, User Interface 에 보다 특화된 UIST 는 일단 규모가 훨씬 작고 좀더 가족적인 분위기라고 한다. CHI를 아직 안 가봐서 비교가 어렵기는 한데,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그렇다. 매년 2월에 열리는 한국 HCI 학회도 그렇고 CHI 도 그렇고 여러 분야의 발표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내가 꼭 듣고싶었던 발표가 동시에 열리면 대략 낭패인 상황.. UIST 의 좋은 점은 single track 이라는 것 – 즉, 참석한 모든 사람이 한 자리에서 같은 발표를 듣는다. 약 260명의 사람들이 참석했는데, 놓치는 것이 없어서 좋기도 하고 별로 재미없는 것도 들어야 해서 좀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가족적인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모르는 사람들과도 점심, 저녁 즈음에 어슬렁거리다 보면 같이 밥/술을 먹으러 가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Socialize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고 논문과 데모 비디오 등이 온라인으로 열람 가능한 시대에도 왜 컨퍼런스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대는걸까? 자신의 바쁜 일들을 제쳐두고 며칠씩 이런 곳에 와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발표를 듣고 할 가치가 있는 걸까? 바로 ‘일들을 제쳐두고’에 답이 있는걸지도 모르겠다 ㅋㅋ 일에서 탈출하고 공적인 돈으로 좋은 곳 여기저기 다니기에 컨퍼런스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의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친분을 쌓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보다 한참 연배나 경험이 앞서있는 대가들과 이야기를 하면 통찰 (같은 주제를 얘기해도 어떻게 이렇게 큰 그림이 딱 보이게 이야기하지?) 과 일할 기회 (협력이나 인턴 등등), 뿌듯함 (나 이 사람이랑 얘기해 봤어!) 등을 얻고, 나보다 2~3년 앞선 과정에 있는 사람과 친해지면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받는다. (예를 들면 각 학교 HCI 연구 동향이나 페이퍼 쓸 때, 발표할 때의 주의사항, 교수님들의 개인사, 야사 ….)
나의 경우는 MIT EECS에서 연구하는 M모군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이 친구는 스탠포드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나와 같은 연구 랩에 있다가 MIT로 박사를 가서, 어느정도 공통분모도 있고 해서 소개받은 이후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친구가 UIST 에서 정말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많은 사람들을 소개시켜주고, 여러 조언도 해주었다.
동년배들은 어차피 이 분야에서 부딪히면서 친해질 수밖에 없는듯. 가장 편했던 사람들이 하버드에서 이제 막 연구 시작하는 Gajos 교수의 제자들. 지도교수인 Scott과 Gajos 교수가 아주 친해서 왠지 편한 것 같기도 하고. 나나 이 친구들이나 연구, 또 학회에 대해 좀 어벙벙한 상태라 동병상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ㅎㅎㅎ
학회의 냉혹함
가족적인 분위기 이면에는 냉혹함 역시 존재한다. 학회에서 사람들이 친해지고픈 느낌이 들게하는 나의 매력은 결국 나의 연구이다. 내 연구가 없으면, 내 status 가 분명하지 않으면 소통도 어렵다. 좋은 학교에서 좋은 교수 밑에서 좋은 연구를 하는 것이 그래서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만으로 소통하는 데에 한계도 있다. 결국은 사람의 관계이기 때문에
다들 입모아 이야기한다. 학회에서는 socialize 를 해야 한다고. 그러나 외국인으로서 메인 스트림에 끼기 위해서는 이 악물고 버텨야 한다. 아직 이들의 커뮤니티, 이런 분위기에 녹아들기에는 내가 여러모로 부족하고 또 이질적인 것 같다. 혼자 호텔방에서 쳐져있으면 당장 마음은 편하지만 결국 더 고통스럽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도, 내 얘기를 흥미있게 듣는 사람도 없지만 가서 부대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정말 피부에 와닿는 수준으로 생각해 보면, 학회의 가치는 나와 비슷한 것을 하는 사람들과 동류의식을 느끼고 내 이름을 알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서 다른 학회에서 봤을 때 같이 밥먹으러 갈 사람들을 만드는 것. Socialize 한다는 것은 결국 외롭지 않게 학계라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울타리 안에서 서로서로 깍지끼는 과정인지도. 내 status 가 중요한 이유는, 이 사람을 믿고 깍지껴도 된다는 신뢰를 주는 지표가 바로 어느 학교에서 무슨 과정으로 누구와 무슨 연구를 하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연구들이 나왔나?
정작 사람 이야기만 하다가 학회 이야기는 못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User Interface 관련 학회이다보니 테이블탑, 월 디스플레이, 모바일 등 새로운 인터페이스 방식에 대한 연구들이 많았다. 내가 하는 웹이나 소프트웨어 쪽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었던 듯. 아래는 이번에 나온 논문들의 제목에 많이 등장한 단어들을 시각화한 것. Leslie 가 만들었다고 학교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다. Mobile, Interaction, Devices, Input 등의 단어가 눈에 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