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상상력의 천국, MIT 미디어 랩

MIT

 

 

나카무라 이치야 지음

윤호식 옮김

청어람 미디어

 

이 책은 저자가 서론에서 언급한 대로 MIT 미디어랩의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 나카무라 이치야는 일본인으로서 MIT 미디어랩의 객원교수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을 충실하게 책에 반영하고 있다. 일반적인 학교와는 어딘가 다른 체계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고유한 성공 모델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MIT 미디어랩. 1985년에 설립된 이 곳은 디지털 전도사 네그로폰테 (Nicholas Negroponte), 인공지능의 아버지 마빈 민스키 (Marvin Minsky) 등이 주축이 되어 학문 간의 벽을 뛰어 넘어 디지털 기술 발전을 주도해 왔다.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을 창조해 내는, 학교보다는 장난감 공장 같은 곳. 한발 앞서 디지털 산업과 문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곳.

 

미디어랩에서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다양한 영역을 세분화하고 각자가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높이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개인이 다양한 분야에 대한 균형 감각을 키우고 이해의 범위를 높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내가 미디어랩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기술자와 예술가가 충돌하는 곳이기 때문이 아니라, 개개의 연구원 각자가 내부에 기술과 예술의 충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갈등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상이한 분야를 넘나드는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다. 아란 게이

 

예술과 관련된 창조적인 측면과, 과학 공학의 기술적 측면을 균형있게 접하고 익힐 수 있는 교육 환경에 단련되어 있어야 한다. 존 마에다

 

[비즈니스 모델]

비즈니스 모델 역시 독특하다. 100개가 넘는 기업과 단체가 스폰서 형태로 미디어랩을 지원하며, 학교의 지원은 일체 없이 랩 전체의 연구비가 조달된다. 스폰서는 연구비 지원의 대가로 랩의 성과물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어 성공적인 산학 협력 모델의 전형을 보인다. 따라서 연구성과는 학문적인 측면과 실용성을 겸비할 수 있게 되고, 시연할 수 없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믿음이 랩 전체에 퍼져 있는 것이다. 또 하나 펀딩 모델에 있어 주목할 점은 스폰서들이 프로젝트 단위로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랩 전체에 대해 투자를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연구 조직은 위험성이 높고 모험적인 연구도 자금 걱정 없이 수행할 수 있다.

 

[2001년 vs. 2007년] 

2001년부터 2년간 쓰여진 이 책은 2007년 현재의 모습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그만큼 미디어랩도 빠른 변화를 겪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선 미디어랩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네그로폰테 교수는 One Laptop per Child (OLPC)재단의 수장이 되어 100불짜리 노트북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고, 기타 교수진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아시아 미디어랩은 인도정부와의 마찰로 2003년 중단되었고, 유럽 미디어랩 역시 아일랜드 정부와 MIT가 새로운 펀딩 모델을 도출해내지 못하면서 2005년 연구가 중단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우려하고 있던 미디어랩의 위기가 현실화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그러나 아직도 최고의 교수진과 학생들이 최고의 여건 속에서 세상을 뒤집어 놓을 연구를 밤낮없이 수행하고 있는곳이 미디어랩이다. 세계적인 기업들도 여전히 미디어랩의 연구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스폰서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이 산학연계가 잘 되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융합]

미디어랩이 만들어 내는 가치의 핵심은 융합에 있다고 생각한다. 공학, 과학으로 표현되는 이과적 지식과 예술, 감성으로 표현되는 문과적 지식이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조화를 이루면서 만들어 내는 창조적인 성과물이야말로 미디어랩의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한 분야에만 정통한 인재는 결코 사회의 변화를 읽어내고 또 이끌어내지 못한다. 자신의 분야에서는 뛰어나지만 다른 분야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아우르지 못하면 지식의 조각들을 연결하는 링크를 만들어낼 수 없게 되고, 나만의 섬에 살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또 만들어내는 것이 지나치게 다변화, 세분화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아닐까?

 

[Specialist vs. Generalist]

젊었을 때에는 specialist가 되고, 나이가 들어서는 generalist가 되라는 말이 있다. 젊어서는 자신의 분야에 통달함으로써 가치를 만들고, 나이가 들어서는 관리자의 위치에서 보다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러나 미디어랩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시너지 모델에서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된다. 젊어서부터 generalist가 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고, 차이를 인정하고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다. 혹은, specialist generalist의 구분 자체가 모호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개개인은 0 아니면 1의 이분법적 분류를 탈피하여 다양한 학문과 지식의 기반을 토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반죽해나갈 필요가 있다.

 

[컴퓨터 공학 vs. 합창]

이런 면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는 내가 합창단 활동을 한 것은 나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컴퓨터 공학은 가장 디지털적이면서 개인적인 성격이 강한 학문 중 하나이다. 컴퓨터만 있으면 나의 물리적인 위치는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Connectivity가 중요할 뿐. 반면 합창이라는 것은 에서 느껴지듯이 일단 모여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어느 파트라도 비면 노래 자체가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한 시간에 한 장소에 모여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다. 합창의 이러한 불편함은 종종 효율적이지 않기도 하고 시간낭비로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불편함을 감수했을 때 얻는 시너지의 매력은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개발 vs. 디자인]

비슷한 비유는 아니지만, 요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또 다른 극단에는 개발(Development)디자인 (Design)이 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는 업종도 다를뿐 아니라 하는 일도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웹 서비스나 RIA (Rich Internet Application) 등에 있어서는 그 경계가 갈수록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Ajax CSS 등의 기술은 딱히 개발자의 것, 디자이너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혼합적인 요소를 띄게 되었고, Microsoft Silverlight, Adobe Flex, Adobe Apollo 등의 새로운 개발 플랫폼은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MS Visual Studio Blend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 개발 작업인지 디자인 작업인지 혼동이 생길 정도이니 말이다.

Author: mcpanic

어떻게 하면 보다 사람냄새 나는 기술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Human-Computer Interaction (HCI) 연구자 / 컴퓨터과학자 / 새내기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