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5분 Boston에서…
늘 연구다 수업이다 박사지원이다 뭐다뭐다 쫓기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조금은 걱정없이 유람(?)을 떠나 Boston 에 와있다. 지난 목요일에 와서 이제 오늘(화요일)에 돌아가니 그래도 학기 중에 5박 6일의 간 큰 여행아닌 여행을 한 셈.
MIT 와 Harvard 의 사뭇 다른 캠퍼스와 학풍, 분위기를 느끼면서 참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고 있다. 몇가지 느낀점..
- 동부와 서부는 다른 나라같구나 +__+ 같으면서도 너무 다르다.
- 도시가 살기 좋기는 하겠구나. 팔로알토는 은근히 꽤나 시골이다.
- 보스턴을 돌아다니면서 몇번인가 꼭 서울같은 느낌을 받았다. 꽤나 반가웠는지도.
- 이번 여행의 수확은, 자신감을 얻게 된 것. 나를 필요로 하고 반겨주는 곳이 있다는 안도감과, 늘 동경해 오던 무리에 내가 속해있다는 묘한 설렘.
- 엄청난 연구성과라든가, 대단한 학교의 교수가 되는 것과 같은 어쩌면 꽤나 중요한 일들도 때로는 별 감흥이 없을 수 있다. 그게 감정이 메말라버린 기계가 되어서라면 좀 슬픈 거고, 응당한 노력을 통해 얻어낸 성과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결과가 요행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래도 사람인데, 방방 뛰면서 좋아하고 혼자 박장대소도 하고 그럴 수 있는 것도 나름 멋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도 좋은데, 즐거움을 멋지게 풀 수 있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재미를 조금은 알 듯.
- 역시 좋은 곳에는 좋은 사람이 많은가보다.
- 직접 보지 않고 판단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또 무서운 일인가. 학교도, 전공도, 도시도, 사람도.
-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다음을 준비하는 자세를.
- 뭔가 제대로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
- 사람들이 나를 serious 하게 대해준다. 나는 언제나 그들을 serious 하게 생각했는데. ㅎㅎ
-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동료로서 교수와, 학생들과, 나와의 관계는 이미 시작되었다.
- 내가 원하는 연구자의 모습은,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 원하는 대로 스스로를 가다듬고 설계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학교가 좋은 학교가 아닐까.
근황
박사 원서만 내고 나면 한숨 돌리고 푹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쉴틈없이 스스로 계속 빡세게 굴리면서 일을 벌이는 내 잘못이 크지만… 바빠서 좋은건, 어드미션 기다리느라 미친듯이 초조해지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것. 요즘 이런저런 일들을 두서없이 정리해 보았다.
1) 이번학기에는 기존에 하던 연구 프로젝트 2개에 이어서 새로운 도전(?) 아닌 도전을 하고 있다. 언제 스탠포드와 bay area 를 뜰지 모르는 상황이라 그런지 이 곳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을 찾아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장 실리콘 밸리와 스탠포드스러운 것. 벤처!!!! 진짜 창업하는 건 아니고, Stanford GSB 의 S356 – Evaluating Entrepreneurial Opportunities 라는 수업을 듣고 있다. MBA 학생들과 타과 학생들이 팀을 이루어서 창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제 벤처 창업의 과정을 두 쿼터에 걸쳐 체험해 보는 수업이다. 잘 진행이 되어 실제 창업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조만간 좀더 자세히 올려볼 예정이다.
2) 하루에 평균 3~4개의 미팅을 하고 있다. 여기와서 거의 제일 많은 미팅을 하는 듯. 덕분에 영어 또한 여기서 있던 6쿼터 합쳐 가장 많이 하는 학기인듯. 그런건 좋기도 하면서 좀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주저하는 한국적인 습관을 버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3) 실리콘 밸리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웹기반, 소셜기반, 위치 인식기반, machine learning 기반의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시장에 나오고 있는 듯. 엔지니어 선점 경쟁도 치열해지는 듯하다. 당장 일하고 싶은 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회사들에서 연락이 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ㅋㅋㅋ 내가 하고있는 전공이 꽤 괜찮다는 생각을 새삼 하기도. 동시에, 동부나 중부 등 다른 동네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다. 대체 무엇이 이곳 사람들과 학생들을 벤처의 세계로 뛰어들게 만드는 걸까.
4) 얼마전 오라클에서 면접을 봤다. 박사 올 리젝의 최악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plan B 를 세워야했기에. 왜 오라클인가? 1) 일단 주위 사람들이 좀 다니고 있어서 정보를 얻기가 좋았고, 2) 스탠포드 학생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루머가 있고 3) 먼저 회사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에, 면접을 보기로 했다. 75분 * 5 팀과 면접을 보고 옴. 역시 다시 한 번 포스팅 해볼 생각.
5) 비가 계속 추적추적 내린다. 역시 1월은 우기. 자전거 타고 다니기 참으로 애매한 날씨. 오늘 오피스에 차 끌고 갔다가 주차할 곳 못 찾아서 40분동안 주차장 근처를 빙글빙글 돌았다.
6) 2005년부터 5년간 사용했던 프랭클린 플래너 종이버전을 과감히 탈피하여 디지털로 전환하고 있다. 0초의 부팅시간과 무한한 배터리 시간을 자랑하는 종이와 펜을 버리기는 쉽지 않았으나, 자동 알림이나 공유, 보관과 검색의 용이성, 다양한 형태의 시각화 등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 웹기반으로 새로 습관을 들이고 있다. 캘린더와 TODO list 의 조합을 쓰고 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조합인 듯하다. 캘린더는 별 고민없이 Google Calendar 를, TODO list 는 여러가지 테스트를 해보고 확장성과 느낌 등을 고려하여 가장 괜찮았던 Remember the Milk 를 쓰고 있다.
7) 시간은 참 자~~~알 간다.
2년만에 다시
나는 같은 상황으로 돌아와 있다. 지난 주부터 시작된 개강에 급하게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어서 정신없는 2주를 보내고 나니 지금 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2년 전 딱 이맘때, 석사 지원을 해놓고 기다리던 게 생각났다. 하루하루 이메일 무한체크를 해가면서 초조함과 또 알 수 없는 스릴(?);;; 이 교차했던 1~3월… 시간은 흘러흘러 2년이 지났고, 많은 것이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다시 그 똑같은 자리에 돌아와 있다. 나의 CV는 조금 달라졌고, 몇몇 숫자들도 조금 달라졌고, 하고싶은 걸 써내려간 글도 조금 달라졌고, 나에 대해 써주시는 글도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도 ‘기다림’, ‘초조함’, ‘불안함’, 또 ‘설렘’의 느낌만은 그대로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한없이 마음 졸이고 힘들다면 힘들었지만, 내 인생의 다음 걸음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었기에, 또 어찌보면 지난 날의 나를 평가받는 순간이었기에 더없이 자신에게 솔직했던 것 같다. 냉정하게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스스로를 난도질 하다가도 알수없는 뿌듯함과 대견함에 자랑스럽기도 했다. 나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평가해주길 기대하면서도 조금은 너그럽고 후하게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결과를 외면하기는 어렵지만, 또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결과지만, 스스로 바라보게 되는 것은 과정이고 또 그 속에 모든 의미가 담겨있다. 내가 늘 시간을 함께 보내온 건 과정인데 결과가 나오면 과정을 외면하고 결과가 모든 걸 말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은 열심히,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며 살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결과는 뜻하지 않게 나오더라도 과정에 있어서는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으므로. 그래서 또 자만해질 수 없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된다.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한없이 초조하고 머리가 곤두서며 짜증나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기다림이 없이는 이상하게도 삶이 무료하고 동기부여도 잘 안 되는 것 같다. 이런 기다림 없이– 어쩌면 그리도 기다려왔던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걸 편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과연 지금보다 열심히, 즐겁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아이러닉하게도 별로 안 그럴 것 같다. 난 계속 새로운 무언가를 기다릴 것이고, 그 지긋지긋한 기다림을 위해 노력하고 마음 졸이고 준비하고 힘들어 할 것 같다.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기다림이 빨리 끝났으면, 또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감사한 생각도 든다. 나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움직이고 공부하고 노력하고 발버둥치게 만들었으니까.
여기서 들어야 할 노래.. 이승열의 기다림. 사랑노래라고만 보기에는 생각보다 가사가 심오하다. ‘아무말 없이 날 안아주는 건’ 기다림을 이겨낸 자의 선물이 아닐까. 안아주는 주체가 연인이든, 나 자신이든,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