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크

이무열 옮김
21세기북스

첫 2초의 힘. 우리는 종종 왠지 모르게 처음의 ‘감’이 무서우리만치 정확한 경우를 경험한다. 이 책은 우리가 ‘감’, ‘직관’, ‘본능’ 등으로 표현하는 감각적이고 때로는 비이성적인 우리의 순간적 판단이 어떻게 중요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4개월 동안의 각종 과학적 조사를 통해 진품으로 인정한 한 조각상이 모조품임을 첫눈에 알아낸 미술사학자, 15분 동안의 대화만 들어도 이 부부가 15년 뒤에 계속 부부로 남아있을 지 맞추는 심리학자, 브랜드를 가리고 더 나은 콜라를 고르는 블라인드 테스트, 외모로 보아서는 최고의 대통령이지만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 받는 워렌 하딩. 이 책은 언뜻 보면 쉬울 것 같고 아무 노력이 들 것 같지 않은 우리의 순간적 감이, 단순히 우리의 무의식적 본능에만 의존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이러한 직관적 판단은 편견을 없애려는 노력과 착실한 경험이 뒷받침 되었을 때 정확성과 파급력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평소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판단이 사실은 사회의 압력이나 타인의 영향을 받아 외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순간 속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불교나 도교의 진리와 같은 이 메시지를 담은 책이 미국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돌아왔다. 저자는 인터뷰에서 ‘블링크’, 즉 우리의 무의식에서 섬광처럼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은 동양인들이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양인들은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외부의 요인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논거와 사례를 통해 우리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수많은 것들이 오히려 우리를 잘못된 결론으로 이끌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인다. 정보의 과잉과 자신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 명쾌한 판단을 흐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간 속에서 모든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 단순한 본능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도 일침을 가한다. 직관에도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조품을 판별하는 경우나 부부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 모두, 짧은 순간의 경험으로 맞추어 냈지만 그 이면에는 이 분야에 쏟은 수많은 시간과 경험이 있는 것이다. ‘블링크’에 제시된 수많은 사례들은 초능력이 아닌 직관적 ‘판단’이며, 이러한 판단을 잘 활용함으로써 여러 가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제는 미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약간은 대안적인, 주류에서 벗어난 주제가 비교적 개방적이고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얼마나 영향을 받고 변화할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지만, 이런 주제가 탄탄한 논거를 갖추고 사람들에게 이성적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블링크’의 순간을 포착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저자의 직관적 판단 또한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Author: mcpanic

어떻게 하면 보다 사람냄새 나는 기술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Human-Computer Interaction (HCI) 연구자 / 컴퓨터과학자 / 새내기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