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이지 않는 컴퓨터

The Invisible Computer

The Invisible Computer

Donald Norman / 김희철 옮김

울력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컴퓨터는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인 도널드 노먼은 컴퓨터가 보다 사용자 중심, 인간 중심적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정보가전(information appliances) 의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내가 컴퓨터 내부의 구조와 기술을 모르더라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컴퓨터’ (invisible computer) 가 궁극적인 지향점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컴퓨터는 너무도 많은 작업을 하나의 기계에서 수행하도록 디자인 되어 있기 때문에 사용이 편리하지도 않고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 졌다고 지적한다.

그 대안인 정보가전은 더욱 작고 이동성 있는, 옷 속에 그리고 몸 안에 있는 임베디드 기기이다. 이러한 전망은 현재까지는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갈수록 휴대기기들이 주위에 흔해지고 있고, 이들 기기들은 점점 작아지고 휴대가 용이한 형태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휴대폰 이외의 휴대기기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다양한 종류의 기기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휴대용 게임기, MP3 플레이어, PMP, 디지털 카메라, UMPC, PDA 등의 기기는 노먼이 예언한 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장비가 아니라 자신의 목적에 특화된 ‘임베디드’ 장비이지 않는가?

두 달여 동안 이 책을 가지고 HCI 연구회에서 스터디를 하면서 이전부터 막연히 생각해 오던 것들에 대해 좀더 깊고 넓게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2005년 초 정도에 ‘휴대기기의 최종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다음 Killer Application은 무엇이 될 것인가?’ 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 질문들에 대해 이 책에서는 정보가전을 들고 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정말로 정보가전이 PC를 대체할 수 있을까?

정보가전이 PC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지만, 자신의 영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갈수록 강력한 기능을 탑재한 특화된 기기들이 사람들의 소비를 더욱 이끌어 낼 것이다. 매일매일 한 시간씩 타고 다니는 지하철이 이러한 흐름을 파악하기에는 더없이 훌륭한 장소이다. 최근 2~3년 동안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DMB와 PMP 를 필두로 한 영상 매체와 PSP, NDSL 등의 휴대용 게임기의 보급이다. 기존의 MP3 플레이어, PDA 등과 더불어 보다 엔터테인먼트 지향적인 장비들이 나오면서 일반인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UMPC와 같이 PC의 다양한 기능들을 휴대화한 제품이 대세로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전반적으로 이들 임베디드 기기들이 앞으로도 성장을 계속하여 큰 시장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은 나도 동의하지만,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범용’ PC를 대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재 PC가 만들어 내고 있는 기반구조가 너무나도 크고 광범위한데다가 범용의 매력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휴대기기가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한 배터리 수명, 발열, 비싼 가격도 문제이다.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정보가전이 큰 흐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가정할 때,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가? 노먼이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기술 중심적인 개발조직과 사고방식이다. 현재의 기술 중심적인 사고방식과 조직구조가 인간 친화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변혁’ 수준의 사고 전환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저자는 인간 중심 개발의 세 가지 버팀목으로 ‘기술, 마케팅, 사용자 경험‘을 들고 있다. 얼마 전 실리콘 밸리에서 두 명이 창업을 할 때 한 명의 개발자와 한 명의 마케터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난 2년간 여러 마케팅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개발과 마케팅이 상호보완적인 두 개의 축을 이루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올해 들어서야 사용자 경험에 대해 막연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지만 이 책에서와 같이 기술이나 마케팅과 대등한 수준의 ‘축’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저자의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하게 되었다.

(관련: User Experience Optimization / 사용자 경험 Primer)

노먼이 생각하는 정보 가전의 비즈니스 모델은 기술수용주기에서 캐즘 이후의, 즉 매출량은 높지만 이윤과 성장은 그만큼 높지 않은 단계이다. 또한 정보 가전이 단순한 휴대용 하드웨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보급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파급효과를 포함하는 시스템이라고 전망한다. 소니가 PSP를 팔면서 기계 자체 장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게임 컨텐츠인 UMD와 메모리 카드, 기타 주변 장치 시장을 노리는 것이 바로 ‘시스템’을 활용하는 예이다. 불법으로 게임을 구동시킬 수 있는 (그 자체로는 불법이라고 보기 다소 어려운) 커스텀 펌웨어 개발에 있어 신적인 존재였던 Dark Alex 라는 해커를 결국 단념시킨 것이 바로 플러스 알파 시장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듯, 성공적인 정보 가전 장사를 위해서 기업들은 단순히 하드웨어에만 신경써서는 곤란하다. 최대한 관련 시장을 키우고 파이를 크게 만드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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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mcpanic

어떻게 하면 보다 사람냄새 나는 기술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Human-Computer Interaction (HCI) 연구자 / 컴퓨터과학자 / 새내기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