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mall Step Forward 유학, 연구, HCI, 정보와 사람, 창의성

24Feb/119

군더더기

군더더기가 많다.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일들. 그 중에 나에게 정말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들도 있지만, 있으나 마나 한 것들도 있고, 오히려 해가 되는 것들도 물론 있다. 군더더기라 함은 본질과 구분되는 부차적인, 있어서 오히려 본질을 가리고 불편함과 불쾌함을 초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부터 군더더기가 군더더기인것은 아니다.

설거지를 막 끝내 깨끗한 싱크대를 보며 뿌듯한 마음이 채 남아 그릇이 한두개 더해질 때는 '아직 괜찮아' 생각하며 설거지를 미룬다. 고무장갑을 끼고 세제를 묻히고 한두개밖에 되지 않는 그릇을 닦고 헹구고 정리해 놓는 데에 걸리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니, 그릇이 좀더 쌓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번에 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익일 것 같다. 이런 고민이 몇번 반복되고 나면, 더 이상 밥을 먹을 때 필요한 그릇이 남지 않는 정도가 된다. 이 때 설거지를 하게 되면, 처음 생각만큼 효율적이지 않다. 일단 좁디 좁은 싱크대에 가득 담겨있는 그릇들을 어느 정도 분류해 놓아야 닦을 때 걸리적거리지 않고, 때때로 이미 닦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헷갈려 여러번 닦을 때도 있다. 닦는 동안에도 다른 그릇이 차지하는 공간을 피해 닦다보니 좁은 공간에서 불편하게 일하게 되고, 헹구는 데에도 물이 튀기 십상이다.

처음 몇 개의 그릇밖에 없을 때는 군더더기라 하기엔 그다지 더럽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없앨 필요성도 그렇게 크지 않다. 쌓이기 시작하면, 군더더기가 아니면서 불편 없이 처리할 시점을 잡기가 참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그 시점을 지나 군더더기가 원래의 일에 차질을 줄 정도가 된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그릇이 없다니...

그릇처럼 잘 눈에 띄고 마음 먹으면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어디 복잡하고 할일 넘치는 요즘 세상에 군더더기가 그뿐이겠는가. 컴퓨터 하드에는 언젠가 보겠지 싶어 하나둘씩 쌓아 놓은 각종 유용한 정보가 한 가득이다. 웹브라우저에는 수십개의 탭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점점 왼쪽으로 밀려난다. 즐겨찾기에도 이미 수백개의 링크들이 들어차 있다. 언젠가 가입해 놓은 여러가지 스크랩과 정보저장 서비스에도 각각 어느 정도의 처리하고픈 정보들이 그득하다. 트위터를 하다가 Favorite 처리해 놓은 것도 어느덧 수백가지, 처리율은 그닥 높지 않다. 책상에는 언젠가 읽겠지 싶어 사모은 책들이 이사 후 박스도 채 개봉하지 않은 채 누워있고. 관련 있어 보여 다운 받아 놓은 논문도 디렉토리에 태깅에 각종 분류를 거치고 나서도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MP3 파일도 국가별, 장르별로 대강은 들어있지만 언젠가는 한번 깔끔하고 찾아보기 쉽게 정리해야 할것만 같다. 디지털 사진이 모이기 시작한 지도 언 10년이 넘었다. 사진은 또 어떠한가.

자, 이 모든 것들이 과연 나에게 필요한 것들일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애초에 모은 것들이긴 한데 말이지. GTD를 적용해 볼까, 나만의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서 아예 생기는 양을 줄일까. 조금씩이나마 처리할 시간을 할애해서 꾸준히 없애나가볼까. 효과적으로 정보를 분류하는, 생산성 높이기 관련 정보들 역시 군더더기 곳곳에 묻혀 있은지 오래다. 그냥 혼란한 마음이 이렇게 쏟아내고 나면 좀 나아질까 해서 ㅎㅎㅎ

  • http://formulapuff.com formulapuff

    안녕하세요,

    주호오빠 글에 스팸 다는 것 같아 죄송한데 ㅎㅎ, “정돈되지 않은” 정보 컨셉에 최근에 집착을 하게 되어서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 보았어요.
    http://formulapuff.posterous.com/personal-data-entropy
    점점 흩어지는 데이터를 보고 Personal Date Entropy 가 증가하고 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알찬 내용 대비 군더더기가 많아진 페이스북도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해야겠지만, 그 회사 하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군요오….

    • http://www.mcpanic.com mcpanic

      이런 그림 진짜 좋다 @.@ 역시 visual thinker구나! ㅎㅎ
      결국 문제는, 정보의 인풋 증가 속도를 서비스의 정리 관리 기능이 따라가지 못해서 entropy가 증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 분명한 문제이고 해결책도 어느 정도는 존재할텐데, 어떻게 디자인하고 프레임하는가가 중요할 것 같아~

  • http://mjspace.wordpress.com formulapuff

    안 그래도 저는 삼일 절 오늘 하루 종일 컴퓨터 사진을 정리하고 8개의 사이트에 나뉘어 있는 링크들을 둘러 보았지요.
    3주간 쌓인 영수증도 하나씩 기록해서 없앴어요.
    우연히 놀러왔다 이 글을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런 데 시간 많이 쓰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좀 창피해 해요.
    조그만 것들을 완벽하게 정리하는 동안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놓치는 것 같아서인가봐요.

    제가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의 요약:

    북마크 남긴 사이트들: xmarx, delicious, google buzz, twitter, facebook
    블로그: tubmlr, wordpress, blogger, posterous, naver
    사진: facebook, flickr

    이곳들에 늘어 놓은 콘텐트를 통합하고 정리할 수 있는 방법 어디 있나요?!!

    대학원 프로젝으로 그런 서비스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 ㅋㅋ 방법은 있지만 노동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

    “무소유”의 개념을 재해석해서, 여기저기 흩어진 콘텐트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리할 필요도 없다… 는 식의 마음 가짐이 필요한 걸까요? -.-

    • http://www.mcpanic.com mcpanic

      나도 진짜 관심 많은 분야인데, 너도 생각 참 많이 하고 있구나 :) 반갑다!
      때로는 그런 생각도 들어.. 나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어서 불안하고 초조하고 찝찝하기는 한데, 정작 그것들이 정리되어 있지 않더라도 사는 데 별 지장은 없는거 아닌가.. 좀더 정리되어 있으면 어떤 점이 좋아지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 거 같아.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건, 가볍게 소비하기 좋은 영양가 없는 컨텐츠는 바로바로 금방 처리하는데, 시간 걸리고 생각 많이 해야하는 더 중요한 것들은 결국 북마크와 트위터 favorite 어딘가에 묻혀버려 그 가치를 잃을 때까지 보지 않게 된다는 거. 잘 만들면 매력적인 서비스가 될 수 있겠지? ㅎㅎ

    • 김태현

      디지털 정보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처럼 지워지거나 찾기 어려워지는 과정이 퍽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유행했던 서비스에 남겨놓은 컨텐츠를 굳이 통합할 필요가 있냐고 스스로에게 물어왔는데, 사실 한편으론 그 니즈를 해소하고 싶어 님과 같은 생각을 요즘 특히 많이 해서 저 역시 반갑네요. 사변적 시장해석으로 출시한 서비스보다 단순한 경험적 니즈로 접근한 서비스가 대박?인 경우가 더 많다고 보는 저로선 이 아이디어 역시 가능성을 품고 있지 않나 생각되네요. :)

      • http://www.mcpanic.com Juho Kim

        단순한 경험적 니즈 = 사용자 중심 디자인 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더 많은 서비스들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유의미한 니즈를 잘 잡아내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김태현

          공급자 중심으로는 언제 니즈가 필요할지 예측하기가 무척 어렵지만 사용자 중심에선 보다 쉽습니다. 상용서비스의 성공 공식 중 하나인 ‘반보 앞서기’ 가 그렇게 어려운 이유도 공급자 중심으로 시장을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또 직접 사용자가 되어서 느끼는 니즈는 단순하고 선명하며 이해하기가 쉬운 반면 공급자 쪽의 니즈 해석은 복잡하고 수용되기 보다 설득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혁신은 간단한 니즈에서 시작하되 위대한 실행과 구현이 레버리지 합니다.

  • http://maybenow.isloco.com rainysea

    법정 스님 글 같은 느낌이 나는 게 도를 하나 또 깨우친 것 같아 ㅋㅋ 금방 금방 해치우는 설거지가 최고 ㅎㅎ

    • http://www.mcpanic.com mcpanic

      설거지에서 이런 인생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