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박사 5 Part 1

박사 5-1: 나라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다

2014.9 – 2014.12

할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Boston에 돌아오니 새삼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상황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씩 더 무겁게 느껴지는 나이와 롱디, 이제는 졸업을 그리고 그 이후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나를 마주한 건 준비하고 있던 7개의 CHI 논문이었다. MSR 인턴십 프로젝트 2개, BudgetWiser 프로젝트 2개, 그리고 내가 참여하던 몇 가지 협업 프로젝트까지.

전환점이 된 순간 3: 스스로 하는 연구

그런데 막상 지도교수인 Rob과 하는 연구가 이 중에 없었다. 재밌어 보인다고 여러 프로젝트에 열심히 달려는 들었는데, 막상 졸업논문과 직결되는 것은 없었던, 아차 싶은 상황이었다. 일단 또 잠 못 자는 몇 주를 보내고 CHI에 꾸역꾸역 7개의 논문을 가까스로 제출했다. 그리고 나서야 Rob에게 자세한 상황을 설명했다. 엄청나게 혼날 각오를 하고 “사실은…” 하면서 털어놓았는데 Rob은 깜짝 놀라면서 “7개나? 와우… 네가 이제 졸업할 때가 되었나 보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박사란 결국 독립적으로 연구 문제를 찾고, 이를 풀고, 결과를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도교수 없이도 이제는 그런 과정을 할 수 있는 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이때가 박사과정에서 전환점이 된 세 번째 순간이었다. 어미 새의 둥지를 떠나 날아가야 하는 아기 새처럼, 결국 박사과정도 지도교수의 그늘에서 벗어나 내 연구를 할 수 있을 때 끝이 나는 것이 아닐까. 독립된 연구자로서 내 연구의 주인은 나이고, 내가 방향을 정하는 것이므로. 그러나 무조건 혼자서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다년간 지도교수, 연구실 동료들과 치열하게 주고받는 피드백, 훈련과 경험을 통해 충분한 성장을 했을 때 비로소 독립적인 연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결국 좋은 연구 환경이란 독립적인 연구자를 키워낼 수 있는 건강한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간섭이 심한 환경에서는 성과는 잘 나올 수는 있지만 “내 연구”를 하기 어렵고, 지나치게 방임하는 환경에서는 연구자가 자기만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성숙한 연구를 하기 어려워진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게도 좋은 환경에서(물론 늘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큰 탈 없이(물론 저년 차의 힘든 시기에서는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는 아직 몇 년씩 학생이 지도교수와 도제식으로 깊이 소통하면서 독립적인 연구자로서의 소양을 익혀나가는 것보다 나은 연구자 훈련 방식을 찾지 못한 것 같다.

The Talk

“독립적 연구”라는 기준이 사실 아주 모호하기 때문에 박사과정에 있어서 어느 정도를 하면 졸업이 된다는 기준 또한 모호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학생 자신도 자기가 언제 졸업할지 불분명하다. 지도교수와 정확한 졸업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체가 이래저래 부담되었기 때문에 나도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해야 할 대화이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5년 차 시작하는 가을에 Rob과 나도 드디어 그 대화(the talk)를 나누었다.

나는 사실 박사과정을 1년 정도 더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미 석사까지 세면 2+5년을 채우는 상황이었지만 연구에 어느 정도 속도와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고, 이런 분위기로 1년 정도 더 연구하면 좋은 연구도 더 나오고 꽤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 학과 박사과정 평균이 6.5년이기도 했고 연구가 점점 재밌어져서 박사과정을 길게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그런데 Rob은 내가 이 정도면 준비된 것 같다고 하면서 이번 job market에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교수 자리를 놓고 구직자와 학교가 일종의 시장을 형성하기 때문에 academic job market이라 부르는데, Rob은 market의 분위기가 매년 너무 달라지기 때문에 개인의 연구실적을 더 쌓으면서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했다. 시간에 따라 구직하는 연구자의 연구 실적 변화보다는 시장의 상황 변화가 훨씬 크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학계는, 적어도 내가 속한 computer science 분야는, 경제 상황이나 소위 말하는 핫 트렌드에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었다. 미국에서는 CRA 웹사이트의 게시판에 학교들이 교수 공고를 올린다. 공고를 들여다보면 해마다 그 해에 많은 학교 찾는 키워드가 있었다. 당시 기준 1~2년 전만 해도 “소셜” 키워드가 많은 교수 공고에 적혀 있었고, 곧이어 “빅 데이터”, “인공지능” 등의 키워드가 대체하는 중이었다. 물론 몇몇 top 학교들은 특정 분야를 언급하지 않고 “좋은 사람이면 분야에 상관 없이 누구든 뽑을 수 있다”는 쿨함을 과시한다. Rob은 이번 job market이 computer science 학문 전체의 인기가 오르고 시장 요구가 많아서 좋을 가능성이 높은데, 내년이 되어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이번에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 개인 상황 상 한국에 가는 것을 선호하겠지만, 미국에서도 job market에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꼭 미국에서 일하게 되지 않더라도 여러 학교나 연구소를 방문해서 내 연구를 소개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 자체가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학교나 연구소에서 인터뷰를 보는 것은 내 연구를 홍보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이 때 아니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내 연구를 듣고 평가하고 피드백을 줄 일도 없다고 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고, 미국에서도 꼭 job market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Job Market 준비

이 한 번의 대화로 졸업 시기와 미국과 한국 job market에 동시에 나가는 것이 결정되었다. 갑자기 연구에서 job market과 졸업으로 내 머릿속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일단 CHI에 내놓은 연구 결과를 기다리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보다 진행 중이던 연구를 좀 더 다듬으면서 job market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온라인상에 job market 관련 여러 정보와 글을 찾아보면서 지도교수님들과 전략 회의를 하고 실질적인 준비를 해나갔다. 학교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일단 기본적으로 학교 목록을 확정하고 Research Statement, Teaching Statement, CV, 추천서를 준비해야 했다(지원 당시의 서류 링크). 지원이 끝나고 나면 학교에 따라 이메일이나 전화로 사전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이 과정을 통과하면 방문 인터뷰(on-site interview) 기회를 얻게 되는 구조였다. Krzysztof는 지원하는 학교가 N개이면, 당연히 상황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그중 대략 1/3 정도에서 인터뷰 기회를 얻고 그중 1/3 정도에서 최종 offer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지원하는 모든 곳에서 offer를 받기란 매우 어렵고, 교수 임용과정이란 연구의 우수성뿐 아니라 학교와 학과의 상황, 문화와 성향, 필요로 하는 세부 분야, 사람들과의 합, 학교나 학과 내 정치 상황 등이 어우러진 복잡한 결정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아주 답답했다. 수능 xxx 점 맞고 내신이 어느 정도 되면 어느 정도 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지 어느 정도 각이 나오는 고3 때보다, 또 학점 xxx 정도에 연구 경험이 어느 정도 되면 어느 정도 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할 수 있을지 어느 정도 각이 나오는 석사 때보다 모든 것이 너무 주관적이고 운의 영향이 커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연연하기 시작해서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서자,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던 일은 Research Statement 쓰기였다. 3~4쪽 정도에 내 연구를 관통하는 스토리를 담고 주요 연구를 소개하며 앞으로의 연구계획을 소개해야 하는데, 사실 그동안은 개별 연구 프로젝트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큰 그림도 계획도 너무 막연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확정이 된 연구 결과물을 가지고 엮어서 스토리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어떻게 나만의 단, 장기 연구계획을 세울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주변의 10명 넘는 사람들에게 작업하던 statement를 보내 피드백과 의견을 구하고 거의 1~2개월 동안 수십 번의 수정을 거쳐 문서를 완성해 나갔다.

지원할 학교 목록을 확정하는 과정 역시 손이 많이 갔다. 일단 내 분야 교수임용 공고가 나는 학교를 트래킹하고 학교별로 지원에 필요한 자료를 챙겨야 했다. 주변을 보니 많이 지원하는 사람은 50개 넘게 하기도 하고 적게 하는 사람들은 10개 이하로 하기도 했다. 나는 아무 데서도 좋은 결과가 안 나오면 내년에 다시 시도할 각오를 하고 가장 가고 싶은 10~15개 학교와 연구소에만 지원하기로 했다. 너무 소신 지원을 해서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지 우는 소리를 Rob에게 했고, Rob은 이 정도 목록에서 그래도 뭐라도 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희망을 주었다. 학교가 아닌 곳은 인턴십을 했고 회사 연구소이지만 비교적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던 MSR과 Adobe Research 두 군데만 지원했다. Rob과 Krzysztof는 학교 목록 선정에 있어 피드백도 많이 주었고, 목록이 확정되고 난 뒤에는 각 학교에 자기들이 아는 교수를 적고, 내가 지원을 하면 개별 연락을 해서 내 얘기를 해 준다고 했다.

추천서를 위해서는 추천인을 정하고 추천서를 부탁해야 했다. 추천인 선정에는 전략적 요소가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Rob은 추천서를 써줄 수 있을 만큼 나와 연구를 같이 했거나 내 연구를 잘 아는 사람을 보드에 다 적어보자고 했다. 이 목록을 보면서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나가면서 어떤 조합이 가장 임팩트가 있을지 논의를 했다. 이런 부분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챙겨주는 지도교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job market에 나가는 것이 단순히 교수 자리를 하나 얻는 의미를 넘어 지도교수와 함께 학계에 몇 년간 공들인 “나”라는 공동의 작업물을 내놓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과정을 통해 총 5명의 추천인을 정할 수 있었다. Rob과 Krzysztof 이외에 MSR 인턴십 멘토였던 Merrie, 그리고 나와 가장 일을 많이 했던 Haoqi와 Philip까지 5명이었다. 사실 Haoqi와 Philip의 경우 교수를 이제 막 시작해서 유명세나 이름값 측면에서 단점이 될 수도 있었지만, 내 연구의 가치와 나라는 연구자에 대해 가장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판단을 했다.

학생으로서 잘 보기 어려운 점 중 하나는 교수들이 어떻게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교류하는가이다. Job market 준비를 하면서 학계가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연구와 연구자의 가치는 객관적으로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peer evaluation이 모든 의사결정에 중요한 비중으로 반영된다. 논문의 합격 여부를 판별하는 것도 객관적인 지표가 아니라 동료들의 리뷰와 토론이다. 새로운 박사학생과 좋은 신임 교수를 확보하는 과정, 교수 승진과 tenure 심사 역시 동료들의 peer evaluation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추천서가 peer evaluation을 담는 주요 단위가 되고, 이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행간의 의미를 읽고 여러 지원자를 비교한다. 좋은 학생과 교수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한편, 추천서를 통해 동료가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결국 실력 이외의 인성, 윤리, 팀워크 등의 요소가 빠질 수 없고, 자연히 스스로 평판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좋은 논문을 쓰는 것을 넘어(물론 기본이 연구의 품질과 임팩트임은 변하지 않는다) 나라는 연구자의 여러 가지 면이 고스란히 추천서, 제출서류, 인터뷰 과정 등을 통해 드러나고 이를 기준으로 각 학교에서는 총체적 판단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사위는 던져지고

이렇게 5년 차의 시작이던 가을에는 실질적인 연구보다는 job market 준비에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 학교의 지원 마감인 12월에 맞추어 모든 지원을 마쳤다. 시장에 나라는 제품을 내놓기 위한 내실을 다지고, 포장하고, 출시하는 과정을 거쳤다. 내놓았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지금까지의 연구와 나 자신을 믿고 달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내 연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임팩트를 내 왔으며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원 없이 했다. 자신감과 확신은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기했고 나를 받아줄 곳이 아무 데도 없을 수 있겠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실제 일은 거의 손에 잡히지 않고 이런저런 고민과 머릿속 온갖 좋고 나쁜 시나리오가 난무하던 시간이었다.

그나마 힘이 되던 것은 비슷한 과정을 함께 해나가던 같은 분야 친구들이었다. 그동안 학회에서 볼 때마다 같이 놀고 힘든 이야기를 나누었던 Walter와 Chinmay도 job market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이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의지가 되었다. HCI 분야 안에서도 이 두 친구는 나와 연구 주제 면에서 가장 가까웠고, 동료이기도 했지만 당장 job market에서는 현실적으로 경쟁자이기도 했다. 크라우드소싱 관련 논문을 엄청나게 뽑아낸 Walter는 나보다 논문 수가 많았고, 온라인 교육 관련 굵직한 연구를 하고 실제 적용까지 했던 Chinmay는 임팩트 면에서 나보다 뛰어나 보였다. 크라우드소싱과 온라인 교육을 접목하는 연구를 하는 나로서는 이 둘의 중간 정도로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런 경쟁과 비교가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굳이 필요도 의미도 없는 파괴적인 생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터놓고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평생 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 job market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지 최종 목표가 아니고, 우리가 비슷한 주제의 연구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재밌고 의미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방증이며, 앞으로 각자의 연구 환경 속에서 협업과 교류를 통해 더욱 시너지를 내자고 이야기를 했다. 다들 힘든 시기라 job market이라는 공공의 적(?) 앞에서 동료애가 생겼다. 뭉쳐야 다 같이 성공할 수 있다는 교감을 하고 서로의 지원 학교 목록과 학교별로 자세한 상황을 공유했다.

사실상 마음속의 1순위였던 KAIST의 경우 연말에 지원 마감을 하고 연초에 인터뷰를 봐 봄에 결정이 나는 미국 학교와 다르게 수시지원이었다. Boston으로 안식년을 와 계실 때 인사를 드렸었던 KAIST 전산학부 오혜연 교수님께 연락을 드려 내 상황을 설명 드리고, 지금이 KAIST 전산학부에 지원하기에 적절한 시점일지 문의를 드렸다. 다행히 학과에도 신임 교원을 뽑을 계획이 있었고 HCI도 충원 계획이 있는 분야 중 하나라는 긍정적인 답을 받아서 지원했다.

한국에서는 KAIST에만 지원했다. 다른 좋은 옵션이 있으면 다른 학교도 지원을 생각해 봤을 것 같은데, 조금 알아보니 박사학위가 없이는 아예 지원조차 불가능한 학교가 많았다. 나처럼 박사졸업 예정자는 다른 나라의 많은 학교와 달리 애초에 지원할 수가 없었다. 또한 학술대회(conference)에 가장 좋은 연구가 출판되는 것이 일반적인 CS 분야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저널 논문만 연구실적으로 인정하는 학교도 많았다. “1저자 저널 논문은 100점”처럼 정량적으로 지원 자격이 정해져 있는 학교도 있었는데 학술대회 논문은 아무리 CHI처럼 해당 분야 최고 학술대회여도 0점이었고 아예 지원자격이 안 되기도 했다. 온라인 지원양식에서 실적 부족으로 아예 지원서 제출 클릭이 아예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MIT CSAIL에는 학술대회 논문 단 하나를 쓰고 교수가 된 전설의 교수도 있었는데, 이런 사례를 생각하니 무의미한 지원자격이 무엇을 위한 것일까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행정적 편의, 또한 정성적으로 연구 역량과 가능성을 평가하려는 의지와 역량 부족 등의 이유로 좋은 지원자들을 놓치는 것은 아닐지.

엄청난 고생 끝에 7개의 논문을 냈던 CHI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왔다. MSR 인턴을 하면서 썼던 두 개 논문과 Walter와 썼던 실시간 크라우드소싱 논문, 그리고 지희와 KAIST 학생들과 함께 헸던 Factful 논문까지 총 4개 논문이 accept 되었다. 이 중 3개 논문이 상위 5% 논문에 주어지는 honorable mention 상을 받았다.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아 좋았고, job market 시기에 맞추어 좋은 결과가 나와서 좋았고, 멘토 없이 지희와 했던 연구도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 좋았다. 어쩌면 자만할 수 있는 결과기도 했는데, 약간은 얄밉게도 같은 해에 job market에 나가는 Walter는 5개의 논문이 accept 되어 나의 겸손함과 긴장감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가운데 또 한해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어김없이 연말에는 한국에 들어갔고, 지희와 미래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계획을 나누었다. 롱디도 어느새 4년 반을 향하고 있었다.


“박사과정을 돌아보며”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