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주제는 연구자의 아바타
들어가기 전에
주제를 정하는 과정
연구주제는 스스로 흥미와 절실함을 느끼는 문제로 잡아야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박사과정 첫학기는 바로 이런 문제를 탐색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구체적으로 논문이나 동작하는 인터페이스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보다 세부적으로 내가 집중하고 싶은 문제를 발견했고 그 분야의 현황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 그리고 이제는 막 풀기를 시작하는 중이다.
"블로깅 툴을 연구한다?"
초보의 실수: 욕심
주제와 연구자의 관계
찾기와 풀기는 다르다
2011년 봄
2월부터 시작한 학기는 'Spring' semester 라고 불리지만, 날씨가 봄이어서 그런건 아니었다. 2월 내내 꽁꽁 싸매고 다니다가 3월이 되니 드디어 조금은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낮이 되면 해도 나고, daylight saving (80년대인가 우리나라에서도 했던 써머타임) 이 시작되면서 해도 길어졌다. 전반적인 생활도 꽤 안정적이고, 바쁘다면 바쁘고 여유롭다면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다.
합창단
이번학기부터 MIT Chamber Chorus 에서 테너로 노래를 하고 있다. 20명 정도 규모의 크지 않은 합창단으로, 파트 당 5명 정도가 노래를 한다. 들어갈 떄는 오디션을 보는데, 솔로로 한 곡을 부르고 간단한 시창을 테스트한다. 합창단을 학부 내내 했으면서도 막상 이럴때 부를 노래가 없구나 탄식을 하면서, 부랴부랴 2002년인가 음악학교 때 듣기만 했던 Ombra Mai Fu 를 속성 연습해 갔다.
시창도 운이 좋게 꽤 들어서 익숙하지만 공연은 해보지 않았던 Jesu Meine Fraude 를 하게 됐다.
어쨌든 합격을 했고, 내 숙원사업이었던 '유학생활 중 노래하기'가 드디어 이루어졌다. 화목 아침 9시 30분부터 90분 연습. 다들 잘하고 시창도 빨라서 진도가 휙휙 나가는 게 기분이 좋다. 이번 학기에만도 크고 작은 3번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한국서 오비공연 할 때 샀던 턱시도도 공수해 왔고. 언제 입으려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입을 날이 왔다. 내 일생의 세번째 합창단이구나 그러고 보니. 노래를 하면서는 좋은 기억들이 많아서 기대가 된다. 한편으로 무대에 섰고 불렀던 기억은 너무 강렬하기도 해서, 남들은 배경음악으로 깔아놓고 듣기 좋은 노래들도 어느새 몰입해서 따라 부르게 되어 집중이 도무지 되지 않는 부작용도 있다.
Visit Day
하버드와 MIT Computer Science Ph.D. 프로그램에 합격한 학생들이 학교를 방문하는 Visit Day 이벤트가 열흘 전쯤 있었다. 얼마전 글로도 썼듯 굉장히 중요한 이벤트고 학과와 교수님, 학생들 모두 신경을 많이 쓴다. 어쩌다 보니 양쪽 학교 이벤트에 다 참여를 하게 되었다. 약 10명 정도의 HCI 관련 학생들이 방문을 했고, 이 학생들과 연구 관심사, 각 학교/교수님/분위기/환경 등에 대해 궁금한 점 등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나도 비지팅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생각을 하니 조금 조바심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내가 속해있는 곳에 대해 궁금해하는 점들을 보니, 외부에서 보는 MIT, 보스턴 HCI 에 대한 시각도 다시금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아래 사진은 내가 일하는 MIT CSAIL Stata Center 7층에 방문하는 학생들을 위해 우리 랩에 Katrina 가 깜짝 이벤트로 설치(?)한 HCI 안내!

7. 학교 방문하기
참으로 오랜만에 쓰는 유학 가이드. 이 글은 이 시리즈의 일곱 번째 글이다. 그 동안 여섯 개의 포스팅을 했고, GRE/TOEFL에서 시작을 해 지원할 학교 결정하기, 준비과정 전반, 학풍 등에 대한 글을 썼다. 수십 개의 흥미로운 주제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학업에 쫓기고 유학생활에 적응을 해나가다 보니 초심으로 돌아가 준비하는 마음에서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 동안 많은 분들이 이 블로그에서 유학 관련 글을 인상 깊게 봤다고 이야기를 해주셔서, 틈틈이 내용을 추가해 보려고 한다.
온갖 몸/마음/주머니 고생을 하여 원하는 학교들에 지원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몇 달은 묘한 시간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무한 이메일 체크를 하며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분야마다 학교마다 편차가 있지만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는 2~3월은 수년간의 고생을 보상 받는 ‘수확’의 기간이다. 물론 좋은 결과가 나올 때의 이야기이지만.. 이 주제는 다음으로 미루고, 일단 어딘가에 합격한 상황을 가정해 보자.
드디어 갑과 을이 바뀌는 행복한 시간이 시작된다. 평소에 동경해 마지않던, 합격한 학교의 교수들이 연락이 오기 시작하고, 선택권은 드디어 나에게 넘어온다. 꼭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서 여러 멘토가 참가자를 선택하면 참가자가 자신이 원하는 멘토를 고르는 ‘복에 겨운’ 상황과 비슷하달까. 뭐 얼마 되지 않는 기간이지만, 짧게나마 갑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오픈 하우스란?
합격 메일에는 프로그램 소개, 행정절차, 학비/생활비 등의 다양한 정보가 담겨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Open House, Visit Days, Visit Weekend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벤트에 대한 초대다. 모든 학교/프로그램/과정에서 하는 행사는 아니지만, 많은 박사 프로그램에서 오픈 하우스 행사를 주최한다. 보통 2박 3일 정도의 일정으로 합격자들을 학교에 초대해서 말 그대로 자기네 학교에 오라고 유혹하는 자리이다. 다양한 유혹성 이벤트들이 합격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시기는 역시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3월 중에 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대부분의 학교가 학생들의 최종 결정을 4월 15일까지로 정해놓았기 때문에 합격 발표가 있는 2~3월과 4월의 사이인 3월 중이 무난하기 때문일 것 같다. Computer Science 의 경우 이번 주에 MIT, 하버드의 오픈 하우스가 있다.
많은 경우 항공권과 숙박, 식사비용은 전액 학교에서 부담하고, 참가하는 입장에서는 ‘접대’를 받으면서 학교에서 정해주는 꽉 찬 일정을 소화하게 된다. 오픈 하우스에서 주로 일어나는 이벤트들은
- 학교와 과,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 (개요, 졸업 필수조건, 박사과정 스케줄 개요)
- 나의 연구분야와 관련된 교수와 학생들과의 개인/그룹 미팅
- 현지 교수/학생들의 연구발표
- 다양한 식사/디저트/술자리 (학생끼리, 교수와 함께, 공식/비공식, 과단위/랩단위/개별)
- 관광 (연구시설, 기숙사, 학교, 도시 투어)
등이 있다.
내 경우 한국에서 석사 지원을 할 때는 아무 학교도 방문하지 않았었고, 미국에서 박사과정에 지원할 때는 4개의 학교를 방문했었다. 그리고 느꼈던 건, ‘이 학교 안 와봤으면 어쩔 뻔 했어!’, ‘내가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과 실제 보는 건 느낌이 확 다르구나’. 어쨌든 이 경험을 통해 학교를 선택하기 전에 꼭 학교를 방문해 보는 것이 좋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공식 행사가 없어도 학교에 가 보는 게 좋다
오픈 하우스가 없는 프로그램이라도, 개별 방문을 할 수 있다. 꼭 합격한 뒤가 아니더라도 미리 지원할 학교를 가보는 것 역시 큰 도움이 된다. 한국에서 석사를 지원할 때 지원 몇 달 전에 스탠포드에 처음으로 가보았는데, 아주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준비를 해가야 할까?
오픈 하우스는 사실 큰 부담은 없는 자리이다. 기본적으로 내가 ‘갑’이니 말이다.
그러나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좋은 의미의 부담을 가져야 한다. 여러 학교를 놓고 고민을 하는 상황이라면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잘 따져 가며 보아야 한다. 이미 이 학교에 가야겠다고 어느 정도 결심을 한 경우에도,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 직접 볼 수 있고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어오는 것이 좋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오는 정보는 사실 위주의 것들이 많다. 결국 가서 얻을 수 있는 엑기스 정보는 소셜 이벤트에서 나온다. 술집에서 옆에 앉은 재학생, 여러 학교를 다녀와 본 내 분야의 다른 합격자 등이 좋은 정보의 소스가 된다. 같은 학생의 입장에서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 속에서 중점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들은,
- 학풍 (학교/과/랩/교수의 학문적 방향성 및 분위기가 나와 맞는가)
- 어떤 교수와 연구를 할 것인가
- 졸업생들의 진로
- 안식년 계획
- 랩 분위기
- 현재 학생 수 및 구성 (연구 관심 분야의 전반적인 라인업)
- 성격 궁합 (정말 중요!! 아무리 유명한 교수여도 성격 안 맞으면 도저히 같이 일 못한다 ㅠㅠ)
- 지역 (생활환경, 치안, 물가, 날씨, 육아, 한인 커뮤니티, 취미활동)
- 전공 분야 (다양한 세부분야가 강한가)
- 다른 분야 (내 연구와 관련된 다른 분야의 리소스)
- 리소스 (학교/과/랩/교수의 재정상황, 학생 복지, 연구시설, 편의시설)
- 학업 계획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수업, 퀄 시험, 논문 등)
- 졸업 요건 검토 (수업, 부전공, 수업조교)
- 학교 (전반적 인상, 명성, 랭킹)
왜 가는 게 좋을까?
합격한 학교에 갈 수 있다면 가 보는 게 좋다는 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한국에 있고, 회사를 다니고, 멀고, 바쁘고, 이 학교는 어차피 안 갈거고 혹은 어차피 입학하면 볼거고 등등의 생각으로 지나치기 쉬운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학교는 최대한 방문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학계에서의 인간관계의 시발점
내가 이 학교를 가든, 가지 않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쩌면 평생 이 분야를 나와 함께 연구할 사람들이다. 학회, 인턴십, 논문 리뷰, 잡 인터뷰, 합동 프로젝트 등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과 마주하게 될 일은 끊임 없이 존재한다. 하버드에 방문했을 때 지금 나의 co-advisor 가 된 교수님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It doesn’t really matter if you come or not. What’s more important is that this is the beginning of our professional relationship. You are now officially entering academia.”
같이 학교 방문을 다니는 동년배들과의 교류 역시 의미가 크다. 나와 같은 출발선상에서 함께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이들과의 친분과 동질감.
자신감
와, 내가 정말 가고 싶던 학교가 나한테 이런 대우를 해주는구나! 그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네. 합격 소식에 좋으면서도 이 학교가 나를 왜 뽑았을까, 행정 오류는 아닐까 싶었는데.
연구방향
방문을 하면 학교 당 평균 수십 명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거의 모두에게 나의 연구 관심사를 설명하게 된다. 이 과정 자체만으로 나의 연구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할 수 있다. 또 사람들의 다양한 피드백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방문 기간 동안 듣게 되는 최신 연구 동향 역시 엄선된 양질의 정보이다.
소개팅
박사과정이라면 앞으로 보통 5~6년의 시간을 보낼 곳인데, 직접 보지도 않고 결정하는 건 좀 위험해 보인다. 학풍에 대한 지난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학교의 명성과 랭킹보다 중요한 건 나와의 조합이고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결혼하는 날 처음으로 배우자의 얼굴을 봤다는 어르신들 이야기가 생각난다면 좀 오버인가?
직감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내가 가게 될 학교에 방문을 하면 그야말로 ‘여기구나’ 하는 느낌이 팍 온다는 것이다. 나는 그 느낌이란 걸 믿지 않았었는데, 실제로 방문한 당시에도 큰 감흥이 있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학교를 다 방문하고 나서 학교 결정을 하는 상황에서는 ‘아, 내가 여기에 가야겠구나’ 하는 강한 느낌이 왔다. 그리고 그 때 떠올린 것은 내가 실제 가서 본 MIT의 캠퍼스와 지금 오피스가 있는 Stata Center 와 7층의 내 자리가 된 그 곳과 내가 가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그 단 한번 올 ‘순간’을 찾기 위해서라도 방문은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