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s for vision-oriented me

실력이 나의 기적이다

June 14, 2010 by mcpanic  
Filed under 사는이야기, 연구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한국만큼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에 도취되어 있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름 여유있는 상황 속에서 즐기고 있다. 나에게 있어 월드컵은 늘 터질 것 같은 긴장감과 기대감, 초조와 불안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리스와의 첫경기를 보면서는, 이상하게 다른 월드컵 때보다 마음이 훨씬 편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적을 바라지 않아도 되었고 (오히려 기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는지도) 객관적인 실력으로 압도한 경기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나라의 월드컵 경기에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되다니…

 

우리나라의 월드컵 도전사는 그야말로 a small step forward 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우선은 월드컵에 진출을 해야 했고, 월드컵 첫 선취골을 얻어야 했고, 첫 승점을 얻어야 했고, 첫 승리를 해야 했고, 첫 16강 진출을 해야 했고, 첫 원정 승리를 해야 했고… 이렇게 한단계씩 밟아 왔다.

 

우리나라의 근 20여년 간의 월드컵 경기들을 봐오면서 느낀 점은, 기적이나 요행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기를 보면서 언제나 마음을 졸이게 되기는 하지만, 결국 결과는 늘 가지고 있는 실력만큼 나오더라. 이 거친 토너먼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정답은 운이 아닌 실력이다. 실력이 있어야 운이 찾아왔을 때 활용할 수도 있는거다.

 

연구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탑 컨퍼런스에 논문을 쏟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힘들여 쓴 논문이 리젝도 먹어 보고, 교수님에게 까여도 보고, 엄청 삽질한 실험이 아무 쓸모가 없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하나씩 배우고 단단해지는거다. 일희일비하는 예민함과 민감함보다는 무던히 자기의 갈길을 가는 우직함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초조해 할 필요도, 나는 왜 저렇게 되지 못할까 자책할 필요도,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마음에 안달낼 필요도 없다.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시간과 내가 몸담고 있는 장소,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이미 최적의 환경이다. 바로 이런 환경을 만나고 싶어서 그동안 그렇게 불안해 하고 밤을 지새며 아등바등 애를 쓰며 살았던 것이니까.

 

이제는 바로 지금,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밟아나가면 된다. 헝그리 정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마인드도 물론 필요하지만, 지금 내게 더 절실한 건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는 안정감과 여유를 가지고 생각을 펼쳐낼 수 있는 자신감이다.

 

꾸준함, 안정감과 자신감이 바로 10000시간 법칙, 10년 법칙이나 deliberate practice 등에서 이야기하는 제대로 된 학습법의 핵심이 아닐까.

 

기적과 같은 승리, ‘마법’이 통해서 얻은 결과,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변보다는 덜 극적이어도 ‘실력과 노력의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귀결’이 훨씬 멋있다. 그 길을 위해 무미건조하고 지루해 보이는 길을 뚜벅뚜벅 걷는 사람들이 이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나도 그들과 같은 걸음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근황

May 20, 2010 by mcpanic  
Filed under 사는이야기

이 블로그에 ‘근황’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글을 2007년부터 띄엄띄엄 4번째 쓰고 있다. (2007년 4월, 2008년 4월, 2010년 1월) 보통 포스팅이 좀 뜸하다가 그동안 뭐하고 살았나 스스로 되돌아 보고 궁금해하시는 소수의 분들께 소식도 전할 겸 쓰게 되는 것 같다. 지난 3년간의 근황 관련 글들을 읽어보니 ‘그때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언제나 바쁘고 정신없었구나’ ‘몇년 전부터 준비하던 일들의 결과를 이제 맞고, 또 나는 몇년 뒤의 일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구나’ 등등의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2007년 4월은 회사를 다니면서 GRE를 준비하던 때였다. 출퇴근 길 전철에서 단어를 외우고, 점심시간, 아침, 저녁을 이용해서 틈틈이 공부를 하고 참 치열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유학 정보와 및 미국의 HCI 연구 동향 등을 열심히 수집한 것. 그 때의 노력 덕분에 분야에 대한 이해가 많이 생겼다.

 

2008년 4월은 병특을 마치고 학부 마지막 학기를 다니면서 석사 학교를 결정하던 시기였다. 조금은 더 여유있게 보낼 수도 있었을 때인데 왜인지 모르게 정신 없었던 때. 이제야 왜 공부하는지, 무엇이 재미있는지 알 것 같은데 학부는 한 학기밖에 남지 않고 유학은 떠나야 하고. 학부 생활에 대한 미련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도 같다.

 

2010년 1월은 유학을 나온지 1년도 훌쩍 넘어 박사지원을 마치고 그동안 밀렸던 연구와 수업에 욕심을 부리면서 바빴던 시기. 지난 겨울학기는 유학을 와서 가장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학기였다. 모의 벤처 수업과 끊임없는 연구미팅에 면접 등등.

 

2010년 5월은, 앞의 세 글을 썼던 때보다는 훨씬 여유있고 안정적인 느낌이다. 앞으로 5+년을 지낼 곳이 결정되었고, 석사는 그럭저럭 잘 마무리 되어가고 있고, 며칠동안 감기기운을 빼면 특별히 힘든 일도 없는 것 같다. 2007년 1월부터 본격적인 유학 준비를 했던 것이 이제야 드디어 마무리가 되는 느낌이랄까. 참 길고 험한 과정이었지만, 나 자신과 내가 하고싶은 일들에 대해 배운 점도 많았던 시간이었다.

 

 

1. 어제 마지막 연구미팅을 했다.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는 것이지만, 나는 이제 내 부분을 정리해서 넘겨주고 공식적으로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작년의 나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석사 친구에게 그동안 한 일들에 대해 설명해주고, 코드를 정리해서 넘겨주고, 마지막 데모를 위해 여러가지 수정도 했다. 미국에 오자마자 정말 운좋게 첫쿼터부터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던 이 프로젝트. 1년 반 유학생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일이었다.

 

이 연구는 여러모로 나에게 고마운 존재였다. 박사진학을 하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고, HCI 연구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도 했고, 돈과 지도교수와 학회경험 등을 주기도 했다. 제대로 된 페이퍼가 내가 있는 동안 나오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앞으로 가능성이 많은 프로젝트이고, 그 첫발을 떼는 데에 내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 같아 아쉬움은 없다. 졸업을 한 달여 앞두고 조금은 일찍 정리하게 된 건, 여름 동안 인턴을 해야 하고, 이제는 ‘내 연구’에 대해서 좀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하기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에 쏟을 에너지가 더 이상은 남아있지 않아서이다.

 

연구 말미에 아이들은 교수님과 다음 할일들과 미팅 일정을 잡고, 나는 좀 덩그러니 묘한 느낌을 받으며 앉아 있었다. 교수님이 ‘You’ve done a lot of work on this project, Juho. You’re graduated from now on’ 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때 이상하게 짠한 느낌이 왔다. 연례행사인 랩 사진을 찍을 때 보자고 하며 공식적인 마지막 연구미팅을 마쳤다.

 

2. IBM Almaden Research Center 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외국인이라 학기 중에는 주당 20시간밖에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6/14까지는 주 20시간을 일하고 그 이후에는 full-time으로 8월 중순까지 일하기로 했다. 내가 속해있는 USER Group 은 HCI 연구 랩으로, 20~30명 정도의 연구자들이 속해 있는, 이 분야에서는 꽤 규모가 큰 랩이다.

 

 http://www.research.ibm.com/images/about/labs/almaden1.jpg

 

연구 센터는 학교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San Jose 의 남쪽 끝에 있는데, 정말 말그대로 산꼭대기에 연구센터만 덩그러니 있다. 근처는 wildlife preservation area 여서 산을 올라가다 보면 사슴도 뛰어다니고.. 건물을 나와서 보이는 것 중에 주차장 말고는 전부 초록이다. 사람의 흔적은 차를 타고 산을 내려가야 찾을 수 있다.

 

3. Social Application 에 들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Facebook 과 Twitter 도 자주 들락날락하고, Mafia Wars, We Rule 과 같은 게임도 꽤 열심히 하게 되었다. 흥미를 잃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Facebook 과 Twitter 에서는 내가 머릿속에 품고 있는 짤막짤막한 생각들을 툭툭 던지고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 게임에서는 플레이를 하는 재마와 만족도 측면에서 여러가지 부족한 것이 사실인데, 묘하게 계속 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4. 감기 떄문에 골골대고 있다. 목이 아프고 칼칼하고 기침도 난다. 그래도 주말에 최악이다가 조금씩 나아가는 느낌. 노래방 가야하는데…

 

5. 캘리포니아에 비가 이렇게 자주 오다니! 작년에는 2~3월부터 비 구경하기가 힘들었는데 올해는 뭐 그냥 계속 심심치 않게 비가 온다.

 

6. 8월 중순이면 이곳을 떠나 동부로 이사를 간다. 그 전에 주변 여행도 하고 책도 좀 읽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앞으로 뭐할지 생각도 좀 해보고 푹 쉬어야겠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이곳에서의 소중한 인연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지난 10년간 가장 단절된 상태에서 살았던 생활이었다. 사람들과 늘 부대끼고 어울려 지냈던 한국이 이럴 때 가장 그립다.

학회에서 Socialize 하기

April 28, 2010 by mcpanic  
Filed under HCI, 연구

학회에서는 논문발표보다 술자리에 가라는 주옥같은 격언(?)이 있다-_-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다양한 연구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학회인만큼, 그만큼 그들과 친해지고 연구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의미있다는 뜻일 것이다. 중요한 부분인 것은 알겠는데, 문제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겨우 미국 학회에 두 번 참가한 풋내기가 이런 것이 쉽다면 그것 또한 이상하기도 하겠지만… 이번 CHI2010 학회에 다녀와서 (후기는 여기에) 문득 학회에서 socialize 하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Socialize 를 하는 상황들

학회 내내 수시로 벌어진다. 아침과 오후에 있는 30분~1시간씩의 coffee break 는 물론이고 세션 사이의 잠깐의 쉬는 시간, 점심시간. 그리고 공식/비공식적으로 열리는 학회 리셉션과 회사, 학교에서 주최하는 파티, 아이들끼리 몰려가서 노는 밥과 술자리, 그리고 Student Volunteer 파티까지. 이 때마다 흔히 일어나는 광경은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소개하고 그야말로 수다를 떠는 것. 과장 좀 보태서 학회에 갔던 5일 정도의 시간 동안 100번 정도는 자기소개를 했던 것 같다.

 

왜 어려운가

- 나를 각인시키기 어렵다. 이제 막 박사과정 시작하는 학생으로 아직 내세울 것이 없다. 변변한 연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가들을 보면 흔히 ‘xxx 분야의 대가 yyy’ 하는 식으로 강한 연관을 지을 수 있다. 학생들의 경우 보통 학교와 지도교수로 연관짓는 경우가 많은 듯. 혼자만의 생각일수도 있지만 백인들의 경우 아시아인들의 얼굴을 좀더 잘 기억/구분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 할 이야기가 없다… 연구의 경우 할 얘기가 좀 있다. 그러나 술마시고 떠드는 자리에서 연구 얘기만 할 수는 없는 법. 그렇게 되면 문화적 컨텍스트가 중요하다. 많이 나오는 주제들을 생각해 보면

- 특정 장소에서의 개인 경험

- 문화적 컨텐트 (TV 쇼, 유명인, 시사)

- IT 전반 (애플, 구글, MS, 페이스북, 트위터…)

사람들이 이런 얘기들을 열심히 하는데, 끼기 어려운 경우가 꽤 많다.

- 언어. 단순히 영어의 문제라기보다는 묘사에 필요한 informal 한 단어와 표현들이 난무해서 미묘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오히려 교수들이 학생들보다 대화하기 쉬운 면도 있다. 그들은 보다 표준화된 단어와 표현을 구사하므로. 물론 재미가 더 없기는 하다 ㅎㅎ

- 유머. 내가 우리나라 말로 대화한다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미국은 유머코드가 더더욱 다르다;; 내가 못 웃기는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그들과의 대화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인듯.

- 문화. 즐기고 향유하는 문화가 다르다보니.

- 자신감. 영어,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소심함…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 전략 세우기. 학회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을 미리 생각하고 그들의 연구 등에 대해 공부를 해가는 것이 좋다. 그러면 아무래도 초반 대화는 수월하게 풀릴 수 있다. 꼭 만나보고 싶은 연구자들은 어떻게든 가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 다다익선이 능사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과 인사한다고 그들이 나를 모두 기억하지는 않는다. 적은 수의 사람들과 좀더 깊이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듯. 뻘쭘한 파티 자리에서 나를 반겨주는 소수의 친구를 만들어 놓는 것이 좋은 것 같다.

- 문화 컨텐츠 숙지하기. 미드, 영화, 스포츠 등 대화할 거리가 필요하다 – 보스턴 가면 야구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 표현 익히기. 페이퍼를 많이 읽는다고 되는건 아닌듯. 연구에 대한 이야기는 차라리 편하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대화를 많이 하고 미드, 영화 등에 나오는 ‘일상 표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 질문 많이하기. 나는 외국인이다. 모르는 게 죄가 아니다. 모르는 건 물어보자. 말을 많이하기 어려우면 경청하는 좋은 인상이라도 심어주어야지 ㅎㅎㅎ

- 외국인의 장점 활용하기. 그들이 가지지 못한 독특한 경험이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될 수도 있다. 다르니까 기죽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가 생기는 것이라고 주문을 외우자. 이런 점을 잘 활용하는 몇몇 인도, 유럽 친구들을 보니 조금은 희망이 생겼다.

 

그래도 중요한 건 내 연구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내 연구의 내실이다. 나의 주관이 뚜렷해야 하고 내 연구의 방향이 분명해야 얻는 것 또한 많아지는 법이다. 연구자들이 모이는 학회인데, 외모나 말빨이 인기의 척도가 아니다. 좋은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관심과 인기가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결국 연구실에서의 외로운 시간들이 헛되지 않음이 학회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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