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학풍

이 글은 유학 가이드 시리즈의 여섯번째 글이다. 학교를 선택하기 전에 고려할 것이 여러가지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에서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이 학풍이 아닐까 한다. 학교마다 고유의 학풍이 있고, 교수와 과목, 연구환경과 분위기, 그리고 당연히 학생들의 연구방향과 성향 역시 이러한 학풍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유학생들로부터 ‘이 학교 뭔가 나랑 안 맞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늗데, 대체로 학풍에 대한 적응 문제인 것 같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선에서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Computer Science 나 HCI 연구에 있어서 Stanford 는 실용적이고 application 중심적인 학풍의 극단에 서 있는 학교이고, CMU나 MIT 는 보다 이론적이고 fundamental 한 연구를 중시하는 것 같다.

 

주위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Stanford 는 주위의 Silicon Valley 회사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학교-회사-학생의 세 축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 프로젝트 수업에서는 기말 발표 때 각종 회사 사람들이 와서 학생들의 발표를 듣고 채점을 하고 네트워킹을 한다. 여기서 인턴십이나 아르바이트 기회를 얻기도 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벤처(Start-up) 정신이다. 이 곳 학생들은 벤처에 대해 ‘내 아이디어가 있으면 꼭 한 번 해봐야 할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벤처회사에 입사하거나 벤처를 시작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여기서는 Ph.D. 를 그만두거나 졸업하고 벤처에 뛰어드는 것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수업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좀 괜찮다 싶으면 바로 비즈니스로 연결시키려는 학생들도 많다. 예를 들어 iPhone programming 수업 같은 경우 Apple 에서 직접 가르치는 수업을 수강한 뒤 자연스레 창업으로 연결시키려는 학생들이 많이 듣는 것 같다. GSB (Graduate School of Business) 나 d.school 의 수업을 보면 아이디어를 실제 구현하고 상용화까지 하는 과정을 다루는 경우가 꽤 있다. 랩 홈페이지 등을 보고 내 주소를 알아내서 창업하는데 같이 할 생각 없냐는 메일도 가끔씩 온다. 또한 학교 곳곳에서 다양한 주제를 통해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을 비즈니스적으로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들이 자주 열린다.

 

이렇게 ‘벤처 권장하는 학풍’이 만연해 있는 곳이 Stanford 이다. 물론 장단점이 존재한다. 장점은 활기넘치는 분위기와 학생들 스스로의 동기부여이다. 프로젝트를 열심히 하면 단순히 수업 학점만 잘 받는 것이 아니라 직업이나 돈, 꿈과 직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학생들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회사들 또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들의 제품을 활용해서 학생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나 소프트웨어를 자발적으로 만들어 준다는 데 마다할 리 없으니 말이다. 단점은 관심 분야의 편중과 학문적 깊이의 부족이다. 커리큘럼이나 교수들의 연구에 있어서 주제의 선택과 집중이 명확하다. 교수들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에 대한 선이 분명한 편이다. 잘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최고의 지원을 받으면서 즐겁게 연구할 수 있지만, 내가 관심있는 것이 주류에서 좀 거리가 있거나 실용적인 가치가 적다면 이런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연히 경쟁력 있는 쪽으로 관심과 자원이 몰리게 되고 여기서 발전이 일어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의 ‘경쟁력’이 학문적 가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실용을 강조해 학문적 깊이가 부족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학교마다 고유한 분위기와 방향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특색이 분명할수록 보통 더 매력적인 학교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성향과 취향을 파악하고 학교와 매칭해 보는 줄긋기 과정일 것이다. 학교마다의 ‘분위기’는 와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운 것들이다. 학교 선택으로 고민을 할 때 과연 이 학교의 학풍이, 이 교수의 연구 방향이 나와 맞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져볼 필요가 있다. 또 그 학교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던져볼 필요가 있다. Visiting day 도 좋고 교수나 랩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물어봐도 좋다.

 

학교의 객관적 명성이나 랭킹은 (일단 객관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지만) 나의 관심과 얼마나 부합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안 맞는 옷을 입고 대학원 5~6년을 보내기에 이 시기는 너무 중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