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mall Step Forward 유학, 연구, HCI, 정보와 사람, 창의성

11Dec/0912

1년 3개월의 유학생활동안 느낀 것들

이제 9시간 정도 후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딱 1년만에 돌아가는 것인데 (10월에 잠깐 3박으로 다녀온 것 빼면..) 작년보다는 한결 마음이 편하다. 박사를 지원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계속해서 조급함과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학교 지원도 완료했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으니.. 그동안 나의 생각과 지식, 또 생활은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생각보다 나는 약하더라. 정신력, 인내심, 지구력 이런 걸로는 어디가서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1년 3개월의 유학생활동안 몸과 마음이 꽤나 피폐해진것 같다. 역시나 불안했던 스테이터스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인드컨트롤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늘 만성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 같다. 공부만 한건 또 아니다. 불안함 때문인지 오히려 더 집중이 어려웠고 힘든 일들도 있고 해서 방황도 꽤나 한 것 같다. 좀더 운동, 먹거리, 취미, 주위환경 등에 신경쓰면서 ‘생활’을 유지해가며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

 

미국은 큰 물이더라. 세계 어느 곳보다 많은 것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다. 연구에서는 기라성같은 학자들이 서로서로 교류하면서 지식의 최첨단을 넓혀나가는 것을 보았고, 수업에서는 뜨거운 벤처정신과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는 분위기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연구환경과 수업의 질 등에 있어서 우리나라보다 월등한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의 대학들도 이렇게 저렇게 하면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많은 요소들이 서로 순영향을 주면서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영어는 어렵더라. 중학교 3년간의 영어가 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대학원 수준의 영어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ㅠㅠ 특히 글쓰기와 표현이 어려웠다. 중요성을 거의 모르고 살았던 ‘the’ 를 써야하는 경우 판단하기.. 말하고 싶은 바를 정확히 설명하기에 적절한 단어와 표현을 몰라서 적당히 비슷하게 표현해서 낭패보기.. 등등 좀 슬펐다. 논문이나 리포트를 쓰는 과정을 통해 다행히 단어 하나하나의 정확한 뜻을 살펴가면서 좀더 세밀한 의미전달을 하는 훈련, 그리고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간결하고 경제적으로 글 쓰는 훈련을 조금은 할 수 있었다. 글쓰는 감이 생기기 시작하는 듯.

 

지도교수는 잘 만나야겠더라. 아무래도 도제방식처럼 연구를 배우는 곳이 대학원이다보니 교수로부터 꽤 많이 영향을 받는다. 직접적인 것으로는 연구방향, 스타일에서부터 논문쓰는 방법, 연구 스케줄 관리, 나아가서는 생활습관이나 말하고 글쓰는 방식까지. 다행히 내가 만난 교수님은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분이었다. 주위에 워낙 교수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많더라.. 특히 스탠포드 CS 는 유난히 쉽지 않은 교수들이 많은듯.

 

뭘 하고싶은지 알게 되었다.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원래 꿈이어서, 하다보니 재밌어서, 다른 것 탐색하기가 두려워서, 여태까지 투자한 것이 아까워서 등등.. 유학을 시작하면서 연구가 내 길이 아니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다. 석사를 먼저 하기로 한 결정도 그래서였다. 회사는 생각보다 재밌는 곳이었고 나의 적성과 재능을 발휘하기에 꽤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좀더 나만의 전문성과 새로움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고, 그걸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곳은 대학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맞는 것 같다. 연구는 나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재미있는 도구이고, 평생을 두고 익혀가면서 즐겨볼만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를 해보았다. 이제 걸음마를 떼는 단계 정도지만, 제대로 된 연구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다행히 처음 하게된 연구가 나의 관심사와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었고, 앞으로의 연구목표와 방향을 구체화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는 교수의 눈에 띄려 애썼고, 제대로 연구를 하게 되면서는 안주하게 된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19Jul/094

영어

영어 장벽이 갈수록 높게 느껴진다.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더욱 정확하고 미묘한 표현의 차이를 알게 되고 그것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을 때의 문제를 느끼게 된다. 특히 학술적인 소통에 있어서 이 문제는 더욱 민감한 것 같다. 적당히 뜻만 통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일상대화와 달리 논문과 같은 연구 상황에서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맞지 않는’ 표현은 틀렸다는 지적을 받는다. 학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커뮤니티이고 소통의 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냥 영어’를 넘어선 ‘학술 영어’를 숙지해야 할 필요성을 많이 느낀다. 요즘 이런 것들에 민감해지다보니 나 자신의 말과 글에 자신이 조금은 없어지는 것도 같다.

 

이런 경험을 언제 또 해보았는고 하니 합창을 한창 열심히 하던 2~3학년때가 떠오른다. 멍하니 재밌게 따라부르는 것이 마냥 좋았던 1학년이 지나고 나니, 듣는 귀가 좋아져서 웬만한 음악을 들으면 못하는 것처럼 들리던 시기가 있었다. 특히 몇몇 가요를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ㅎㅎ 합창의 경험에 비추어서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긍정적이기도 하다. 더욱 노력하면 노래도 조금은 느니까. 4학년 이후 정도부터는 내가 들었을 때 귀에 거슬리는 것들을 스스로 부르지 않기 위한 노력을 했다. 그렇게 또 어느정도가 지나니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어느 정도 거슬리는 요소들은 소리에 담기지 않았고, 좀더 고차원적인 것들 – 음악을 만들거나 곡의 흐름을 이해하는 – 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영어도 그러지 않을까. 그러니 지금의 단계를 “부주의하게 사용하는 표현들을 보다 정확하게 구사하고 의미전달을 보다 분명히 또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을 익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영어를 구사함에 있어서 문화 컨텍스트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해의 포인트라든가, 내가 원하는 바를 전달하는 접근법에서의 차이 등을 좀처럼 따라잡기 어렵다. 교수님과 얼마전에 면담을 하다가 이런 얘기를 잠깐 했는데, 교수님의 두가지 조언은

1) 매일 30분씩 글쓰기를 해보라.

2) grammar 공부를 하라.

 

이 두가지였는데, 거기에 덧붙여 잘쓴 논문들을 많이 읽고 그 속의 표현이나 글 전개방식 등을 모방하면 도움이 많이 될거라 하셨다. 생각해보면 미국에 와서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정작 영어를 그렇게 많이 쓰지는 않은 것 같다. 그냥 혼자 앉아서 인터페이스 만들고 프로그래밍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방학이 되고나서는 매일 오피스에 나가고 또 같이 연구하는 학부생 두명과 영어로 계속 소통을 많이 하다보니 특히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요령이나 지름길 같은건 어차피 없는 것. 더 많이, 또 주의깊게 쓰다보면 잘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즐기면서 하게 되지 않을까.

13Mar/0910

자신감이 없다구?

유학생활을 하면서 여러가지 좋은 일 나쁜 일이 있겠지만 외부상황이 아닌 스스로의 답답함만큼 안타깝고 또 힘든 벽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쓰고나니까 엄청나게 큰 시련을 겪고있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자신감’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학기말에 몰아치는 프로젝트와 과제도 아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아니다. (이거 물론 상당히 힘들기는 하다 ㅋ) ‘내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생각, 아이디어를 충분히 표현하고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방해를 하고 있는걸까? 생각의 끝에 문제의 원인은 ‘자신감의 부재’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자신감이 왜 없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 측면의 자신감이 문제인 것 같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하나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틀릴 것 같기도 하고 발음도 어색할 것 같고 상대방이 못알아듣거나 영어 못한다고 무시할 것 같아서 망설이는 게 생기는 것 같다. 이건 너무 영어를 잘해보려고 애써서 그렇다는 생각도 든다. 외국인처럼 안 보이려고, 실수를 안 하려고 신경쓰다보니 정작 중요한 내용보다는 그 말이 나오는 형식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화의 맥을 놓치기 십상이고 집중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 유학온 외국 학생에게 우리나라 말 못한다고 실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영어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지 않으면 실력이나 의지가 없다고 오해받을 수 있다. 그런 것보다는 외국인이니까 영어는 좀 못해도 이해해달라고 말하고 의사표현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또 하나는 분위기에 대한 자신감이다. 미국인들이, 스탠포드가, HCI group 이, 수업이, 교수가 어떤 분위기인지를 잘 몰라서 뻘타치거나 실례를 범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온 지 6개월이 되었다. 분위기 파악은 나름 자신있는 터였는데, 이제는 대충 파악을 한 것 같다. 좀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남 신경쓰지 않고 마음껏 뛰놀아도 설쳐도 되는 분위기다. 이런 데서 나의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말그대로 남들보다 더 나서고 설쳐야 한다. ‘보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자신감있게 보이는 적극적인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약간 건방지거나 말만 거창해보이는 수준 정도가 가장 적절한 수준인 것 같다. 그것이 미국 스타일이다. 한국인 유학생 중에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반영시키지 못하는 것 때문에 연구성과를 남에게 빼앗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적어도 뒤에서는 고생 다하고 인정 못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좀더 자신있게, 두려움 없이 현실에 맞서자.

 

어제 같이 연구하는 애 중 괴짜 스타일의 4년차 박사 녀석이 고마운 충고이자 뜨끔한 이야기를 했다. 아 물론 영어로-_-;;; 들을 때는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지만, 곱씹어 볼수록 맞는 이야기이다. 잊지 않아야겠다.

“교수와 친구처럼 편하고 격의없이 이야기하지 못하면 연구에 발전이 없어. 연구 미팅이 있을 때는 어떤 의견이든 마음에 든다 안 든다 좋다 싫다 Speak up! 해야된다고.. 니가 필요한 것, 하고싶은 것, 불만인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 해야돼. 니가 어떤 유명한 연구자를 만나더라도 그 사람의 연구주제나 의견이 마음에 안 들면 ‘당신 연구 정말 !@$ 같아’ 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