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Hesse

Die Well de Buecher

헤르만 헤세
김지선 옮김
뜨인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데미안’을 읽던 사춘기 어느 날. 좀처럼 책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의무감에 책을 끄적끄적 읽던 중학교 시절. 책장 속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세계 명작선에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집어들었다. 몇쪽 읽다가 잠이나 들어야겠다 생각했는데, 밤을 새서 끝장을 덮고나서야 잠이 들었다. 평생 독서를 한 중 가장 강렬한 기억이 남아있는 책이다. 그 이후 ‘지성과 사랑’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역시 감명깊게 읽었다. 10년이 지나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이 책의 출판을 알게 되었다. 사춘기 소년이었던 나에게 그렇게 강렬한 독서경험을 던져준 헤르만 헤세는 독서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해 줄 것인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독서, 이것만 지키자 20가지’ 등의 가벼운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책은 헤르만 헤세의 문학, 독서, 책에 관련된 다양한 글을 모아서 엮은 것으로, 원제는 ‘책의 세계’이다. 번역 제목의 ‘기술’ 이 이 책의 격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가 우려가 된다.

진정 책의 가치를 알고 책을 즐길 줄 아는 사람. 이 책을 통해 헤르만 헤세에 대해 내가 내린 나름의 정의다.

책의 중간부에는 저자가 추천하는 세계문학 도서관의 추천 장서 목록이 나온다. 권장도서니, 추천도서 100선 등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저자이지만 자신의 취향을 글로 밝혀놓는 것은 거부하지 않은 탓에 헤세의 문학 식견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나의 짧은 문학 지식 때문에 알고 있는 책이라고는 몇 권 되지 않았지만 다들 읽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우선 성경과 불경, 논어와 도덕경 같은 인류의 지혜 보고에서 시작하여 고대문학, 중세문학, 근대문학을 총망라하는 그의 추천장서목록은 그저 놀랍다. 진정 인류의 ‘책’이라는 유산이 갖고 있는 본질과 가치를 꿰뚫고 있는 guru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 독서와 책에 대한 그의 몇 마디를 옮겨적는 이상으로 내가 말을 지어낼 재주가 없다.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일상을 잊고자 책을 읽어서도 안 된다. 이와는 반대로 더 의식적으로, 더 성숙하게 우리의 삶을 단단히 부여잡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최고로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보다 형편없는 시를 짓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

걸작들의 가치를 검증하기 전에, 먼저 우리 스스로가 자격을 갖추어야 마땅하리라.

책마다 지닌 고유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경지는 과연 어느 정도인가? 206년 한 해 1주일에 한 권 책읽기를 하면서 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과 교훈을 어떻게든 나중에도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냥 읽어재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책에서도 무언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찾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이 생각은 괜찮은 것 같다. 다만 책 자체의 즐거움보다 너무 교훈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나에게 적용할 점
‘싯다르타’ 읽기
‘데미안’, ‘지성과 사랑’ 다시 읽기
꼭 읽을 책만 읽되, 그 책은 온 집중을 다해서 읽기
완독을 할 필요가 없는 책은 발췌독만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