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mall Step Forward 유학, 연구, HCI, 정보와 사람, 창의성

15Mar/105

연구를 해, 공부를 해?

연구와 공부는 다른 것인가?

각각의 정의와 의미 이런 걸 따지기보다 그냥 피부로 느껴지는 수준에서 생각해 보고 싶다. 내가 느끼기에 연구는 질문을 만들고 어떤 방법을 택해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이라면, 공부는 주어진 문제에 대해 역시 어떤 방법을 택해 풀어나가는 과정인 것 같다. 연구가 질문에 초점을 둔다면 (보다 학문적, 실용적으로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 공부는 방법론에 초점을 두는 것 아닐까. (A라는 문제를 푸는 방법을 기존의 지식과 그 응용을 통해 터득하는 것)

그럼 그 다음 질문. 공부를 잘 하면 연구를 잘 하는 것일까?

바보같은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유학을 와서 꽤나 진지하게 많이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 흔히 공부를 잘한다고 하면 학점이 좋고 시험을 잘보고 이런 것들을 떠올린다. 연구를 잘한다고 하면 좋은 주제를 잡고 논문을 잘/많이 쓰고 이런 것들이 생각나고.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이 보통 좋은 학교에 많이 가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대학들이 연구 경험이 많이 없는 학생들 사이에서 ‘연구를 잘 할 것 같은’ 학생들을 뽑기 때문이다. 그리고 꽤 많은 경우 ‘연구를 잘 할 것 같은’의 기준은 학점, 시험점수와 같은 ‘공부’의 측정 방법으로 미루어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이 둘이 과연 그렇게 크게 상관있는걸까?

연구-질문, 공부-방법론이라는 좀 과격한 나의 단순화를 받아들인다면, 이 둘은 당연히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는 것 같다. 우선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지식과 스킬이 큰 도움이 된다. 아니, 지식과 스킬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웹상의 정보를 보다 효율적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도구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다양한 연구 주제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 연구를 진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웹’, ‘학습’, ‘정보’ 등의 키워드 각각에 대해 지식과 스킬이 중요해진다. 구체적인 방법론과 스킬을 알고 있으면 문제 또한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가에 대해 보다 뚜렷한 비전을 세울 수 있다. 이 예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정보를 습득하고 처리하는가에 대한 이론적 지식, 학습의 과정과 필요 조건, 실질적인 웹기반 툴의 구현에 필요한 Javascript, AJAX, CSS 와 같은 다양한 지식과 스킬들이 중요한 툴박스가 된다. 즉, 이런 지식들을 갖추고 있으면 문제 풀기가 수월해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더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서 보스를 깨는 데에 보다 수월해지는 느낌?

또한 공부를 하는 데에 있어서도 연구 마인드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 드넓은 지식의 바다 속에 내가 필요한 것들을 찾아서 배워야겠다는 방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지적 호기심을 따라 흘러가듯이 습득해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많은 경우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는 것또한 사실이다. 학문의 즐거움을 깨달은 달인의 수준에 못미쳤다면 말이다. 나 또한 이 경지와는 아직 격차가 있는듯 ㅠㅠ 어쨌든 보다 구체적인 문제의식이 있으면 뭘 공부해야 하는지 분명해지는 것 같다. 어떤 보스를 무찔러야 하는가에 대한 정보가 분명하면 어떤 아이템을 습득해야 하는가가 분명해 지는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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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공부를 소홀히 한 것 같다. 재미있는 연구 프로젝트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온 석사과정이었다. 한편으로는 공부가 부족해서, 내가 가진 툴박스의 빈약함이 늘 안타까웠다. 없는 아이템들의 조합으로 강적을 상대하려니 늘 분주했고 힘에 부쳤다. 그래도 얻은 큰 수확은 뭘 공부해야 하는지 알겠다는 것. 나의 지식포트폴리오에 채워야 할 것들과 채웠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좀더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늘 연구의 키워드로 삼는 ‘창의성’, ‘도구’, ‘컨텍스트’와 같은 큼지막한 주제들에 다가가는 길을 뚫고있는 과정인 것도 같다.

이제 내가 가진 조금의 숨돌릴 여유와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을 보다 현명하게 활용해서, 필요한 것들을 좀더 습득해야겠다. 연구모드와 공부모드의 전환이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좋은 타이밍인 것 같다. 레벨업 노가다가 아니라, 와신상담의 자세로 복수의 칼을 가는 외로운 무사! 연구경험은 공부가 그 의미를 더해가는 중요한 기폭제였고, 이렇게 얻는 지식은 또다시 좋은 연구로 연결되는 선순환으로 이어질거라 믿는다.

28Jan/102

학문과 질문

배울 학 / 물을 문. 학문을 하는 사람, 즉 학자란 묻는 법을 익히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

 

기본 중의 기본을 새삼 많이 느낀다. 이기적이라 할만큼 나의 이해에 초점을 맞추고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묻고 대화하고 깨달아 나가야 한다. 이해를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하고 넘어가다가는 결국 벽에 부딪힌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학습 문화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라고 느낀 것이 바로 내 이해정도에 대한 피드백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었다. 아니 어찌보면 나라의 차이도 있겠지만 나의 습관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연구 미팅을 한다고 가정하자. 새로운 연구 결과나 용어가 언급이 되면, 나는 머릿속에서 ‘아 모르는거네.. 나중에 찾아봐야지’ 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전체 흐름을 방해하는 것 같기도 해서. 암묵적으로 ‘어느 정도 선’까지 정보를 얻으면 알아서 나중에 내가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나가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데 이곳 친구들은 상대가 누구건 상관없이 자신이 완전히 알아들을 때까지 다시 묻고 또 묻는다.

 

얼마전 어디선가 본 글이 기억에 남는다. “영어권 문화에서는 화자가 자신의 말을 청자에게 이해시킬 의무가 있다고 느끼고, 동양 문화에서는 청자가 화자의 의중을 파악할 의무가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영어권 문화에서는 “You know what I’m saying?”, “Am I making myself clear?” 라는 말이 화자의 입에서 끊임없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자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이해의 과정이 화자의 말 중간중간 바쁘게 돌아간다.

 

또하나 느낀 건 바보같은 질문이어도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질문은 단순히 궁금한 것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소통이고 또 논의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 역시 미팅에서 많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누군가가 굉장히 단순해 보이고 지금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러면 나는 생각한다. ‘굳이 저런걸 왜 지금…’ 그런데 이제부터 마술이 일어난다. 상대방은 굉장히 성실하고 깊이있는 답변을 한다. 그리고 대화는 점점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부분으로 조금씩 확대되고, 논의는 이미 새로운 국면으로 진행된다. 질문을 통해 새로운 토픽이 제시되고 새로운 관점이 더해져 이야기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결국 연구의 본질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남이 던진 질문에 답을 하려면 취직을 하면 되고, 내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하고 싶으면 (꼭 해야되는 것 같지는 않다 ㅎㅎㅎ) 연구를 하면 되는 것 같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벤처나 창업. 역시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내고 답하는 방법을 찾아야하는 과정이다. 이게 매력일지도.

 

연구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세가지 질문의 방법을 계속 머리에 되새길 필요가 있다.

- 나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 주위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 교수에게 질문을 던진다

10Oct/094

피드백 주고 받기

앞서 쓴 글과 같이 창의적 연구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엄정한 과정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걸 잘 하는 것이 좋은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미국에 와서 가장 차이를 느끼고 또 내가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바로 피드백을 주고 받는 부분이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 때문인지 학부와 대학원의 차이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중요한 건 힘들다는 것, 또 큰 transition 이라는 것이다. 스탠포드에서 연구를 하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요청하고 또 그들의 작업물에 대해 피드백을 주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 때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이해를 못해서 뻘소리 하는 걸까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무언가 막연한 느낌은 있는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뭐, 뻘타라도 생각나는 것이 있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_-

 

이 때 유용한 테크닉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내가 잘 모르겠는 부분, 생각이 막히는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고 그 답을 듣는 과정을 통해 양측 모두 느끼는 바가 생기기 마련이다. 질문을 받는 사람은 자신의 결과물에서 이런 부분이 이해가 어렵구나, 사람들은 의도와 다르게 이해하고 있구나 등등을 배울 수 있고, 질문을 하는 사람은 보다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건설적인 비판을 해줄 수 있다. 질문은, 꼭 좋은 질문이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바보같은 질문을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양측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질문은 그냥 속편하게 던지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언제나 나은 것 같다. 물론 생산적이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는 것이 멋있어 보이고 내공 있어 보이는 건 당연하지만.. 이건 또 다른 문제다. 걸음마도 안 뗐는데 뛰는 자세 고민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ㅋㅋㅋ

 

질문과 더불어 유용한 방법은 다른 객관적인 자료를 포인팅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많고 참고할만한 데이터와 페이퍼, 정보가 많은 사람이 유리한데, 보통은 교수님들이 그렇다. 같은 피드백을 주더라도 ‘내 느낌에는 좀 거시기한 것 같아’ 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A 가 쓴 B 논문을 참고하면 이런 점이 나오는데 그걸 적용해보면 거시기한 느낌을 좀 줄일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신빙성 있고 설득력 있다. 문제는, 나의 library 를 구축해 놓는 것. ㅠㅠ 이건 뭐 쉬운가…

 

비슷한 의미로 비유를 제시하는 것이 있다. 나의 입장을 견지하려 할 때 설득력 있는 비유를 제시하는 것은 아주 유용한 방법이다. 이것 역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하고 또 풍부해야 가능한 고급 기법인 것 같다. 내가 스스로 비유를 꽤 괜찮게 한다고 느끼는 때가 가끔 있는데, 그건 한국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얘기할 때 뿐이다 –_- 영어로, 연구 관련 이야기를 할 때 그런 비유가 작렬하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결국 위에 나열한 것들을 잘 하기 위해서는 사고부터 달라져야 한다. 똑같이 페이퍼를 읽고 지식을 쌓더라도 어떤 의도로 이 지식을 습득하는가에 따라 나중에 이 지식이 쓰이는 용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페이퍼를 읽을 때 흥미로운 점, 다른 연구에 적용할 수 있는 점 등을 정리해 놓으면 두번째 제시한 포인팅 스킬이 향상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나 생각이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다른 비슷한 무언가’를 찾아보는 훈련을 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적절한 비유가 떠오를 수 있고 내가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과정이고 또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나하나 깨우쳐 나가면서 배움을 헛되이 날려버리지 않고 나의 연구 습관과 태도에 적용시켜 나가다 보면 이 ‘수련과정’이 계속 되면서 나의 레벨도 올라가겠지. 아마도 이 레벨이 꽤나 쓸만한 수준에 도달하면 (또는 도달했다고 주위 사람들을 믿게 만들 수 있다면)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