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ST 학회를 다녀와서

10월 2일~10월 7일까지 캐나다의 빅토리아에서 열린 UIST 2009 학회에 다녀왔다. 논문은 아니고 포스터 발표기는 했지만 처음으로 나의 작업물을 학회에 들고가서 발표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소중한 첫경험을 했다.

IMG_2328

UIST 의 포지셔닝

CHI는 너무 크고 온갖 분야의 사람들이 다 모이는 반면, User Interface 에 보다 특화된 UIST 는 일단 규모가 훨씬 작고 좀더 가족적인 분위기라고 한다. CHI를 아직 안 가봐서 비교가 어렵기는 한데,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그렇다. 매년 2월에 열리는 한국 HCI 학회도 그렇고 CHI 도 그렇고 여러 분야의 발표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내가 꼭 듣고싶었던 발표가 동시에 열리면 대략 낭패인 상황.. UIST 의 좋은 점은 single track 이라는 것 – 즉, 참석한 모든 사람이 한 자리에서 같은 발표를 듣는다. 약 260명의 사람들이 참석했는데, 놓치는 것이 없어서 좋기도 하고 별로 재미없는 것도 들어야 해서 좀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가족적인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모르는 사람들과도 점심, 저녁 즈음에 어슬렁거리다 보면 같이 밥/술을 먹으러 가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Socialize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고 논문과 데모 비디오 등이 온라인으로 열람 가능한 시대에도 왜 컨퍼런스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대는걸까? 자신의 바쁜 일들을 제쳐두고 며칠씩 이런 곳에 와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발표를 듣고 할 가치가 있는 걸까? 바로 ‘일들을 제쳐두고’에 답이 있는걸지도 모르겠다 ㅋㅋ 일에서 탈출하고 공적인 돈으로 좋은 곳 여기저기 다니기에 컨퍼런스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의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친분을 쌓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보다 한참 연배나 경험이 앞서있는 대가들과 이야기를 하면 통찰 (같은 주제를 얘기해도 어떻게 이렇게 큰 그림이 딱 보이게 이야기하지?) 과 일할 기회 (협력이나 인턴 등등), 뿌듯함 (나 이 사람이랑 얘기해 봤어!) 등을 얻고, 나보다 2~3년 앞선 과정에 있는 사람과 친해지면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받는다. (예를 들면 각 학교 HCI 연구 동향이나 페이퍼 쓸 때, 발표할 때의 주의사항, 교수님들의 개인사, 야사 ….)

나의 경우는 MIT EECS에서 연구하는 M모군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이 친구는 스탠포드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나와 같은 연구 랩에 있다가 MIT로 박사를 가서, 어느정도 공통분모도 있고 해서 소개받은 이후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친구가 UIST 에서 정말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많은 사람들을 소개시켜주고, 여러 조언도 해주었다.

동년배들은 어차피 이 분야에서 부딪히면서 친해질 수밖에 없는듯. 가장 편했던 사람들이 하버드에서 이제 막 연구 시작하는 Gajos 교수의 제자들. 지도교수인 Scott과 Gajos 교수가 아주 친해서 왠지 편한 것 같기도 하고. 나나 이 친구들이나 연구, 또 학회에 대해 좀 어벙벙한 상태라 동병상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ㅎㅎㅎ

학회의 냉혹함

가족적인 분위기 이면에는 냉혹함 역시 존재한다. 학회에서 사람들이 친해지고픈 느낌이 들게하는 나의 매력은 결국 나의 연구이다. 내 연구가 없으면, 내 status 가 분명하지 않으면 소통도 어렵다. 좋은 학교에서 좋은 교수 밑에서 좋은 연구를 하는 것이 그래서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만으로 소통하는 데에 한계도 있다. 결국은 사람의 관계이기 때문에

다들 입모아 이야기한다. 학회에서는 socialize 를 해야 한다고. 그러나 외국인으로서 메인 스트림에 끼기 위해서는 이 악물고 버텨야 한다. 아직 이들의 커뮤니티, 이런 분위기에 녹아들기에는 내가 여러모로 부족하고 또 이질적인 것 같다. 혼자 호텔방에서 쳐져있으면 당장 마음은 편하지만 결국 더 고통스럽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도, 내 얘기를 흥미있게 듣는 사람도 없지만 가서 부대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정말 피부에 와닿는 수준으로 생각해 보면, 학회의 가치는 나와 비슷한 것을 하는 사람들과 동류의식을 느끼고 내 이름을 알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서 다른 학회에서 봤을 때 같이 밥먹으러 갈 사람들을 만드는 것. Socialize 한다는 것은 결국 외롭지 않게 학계라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울타리 안에서 서로서로 깍지끼는 과정인지도. 내 status 가 중요한 이유는, 이 사람을 믿고 깍지껴도 된다는 신뢰를 주는 지표가 바로 어느 학교에서 무슨 과정으로 누구와 무슨 연구를 하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연구들이 나왔나?

정작 사람 이야기만 하다가 학회 이야기는 못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User Interface 관련 학회이다보니 테이블탑, 월 디스플레이, 모바일 등 새로운 인터페이스 방식에 대한 연구들이 많았다. 내가 하는 웹이나 소프트웨어 쪽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었던 듯. 아래는 이번에 나온 논문들의 제목에 많이 등장한 단어들을 시각화한 것. Leslie 가 만들었다고 학교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다. Mobile, Interaction, Devices, Input 등의 단어가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