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과 전문성 수업
이번학기에 듣는 수업중에 (사실은 유일한 수업;;;) 심리학과 수업이 있다. The Social Foundations of Intelligence and Expertise 라는 흥미로운 이름의 수업인데, 지능과 전문성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우선 첫번째 주제인 지능에 대해서는, 사람의 지능을 어떻게 정의하고 측정하는지, 또 인종/문화별 IQ 의 차이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세대가 내려갈수록 IQ 가 증가하는 Flynn Effect 등을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두번째 주제인 전문성(심리학에서 말하는 expertise 의 번역이 맞는지 모르겠다) 에 대해서는 역시 어떻게 정의하는지, 또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특성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문성을 길러내기 위한 훈련과 환경의 영향은 어떠한가에 대해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서 토론하고 있다.
이 수업을 듣게 된 배경은, 내가 하는 연구에 보다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컴퓨터라는 도구를 통해 사람들의 창의성, 생산성, 전문성, 학습 능력 등을 향상시키는 것이 나의 연구 목표인데, 이를 위해서는 보다 나은 알고리즘과 인터페이스/인터랙션 디자인으로 도구를 만드는 이른바 공학적인 접근과 더불어 사람들의 기본적인 본성과 심리를 이해하는 인문학/심리학적 관점이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석사를 하는 거의 2년 가까운 시간동안 뚝딱뚝딱 밤새서 프로그래밍하고 여러 사이클에 거쳐 인터랙션 디자인을 수정하는 등의 작업에 대부분을 쏟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도 있었고 몸과 마음이 지치기도 했다. 그래서 15명 정도 되는 학생들 중에 유일한 비심리학과 학생으로 ‘지능과 전문성’에 대한 수업을 듣게 되었다.
매주 논문 2~3개를 읽고 2~3쪽 분량의 reaction paper 를 제출한 뒤, 주당 2번의 수업 중 하루는 학생 한두명씩 토론 주제를 준비해 와서 discussion 을 한다. 이상하게 컴퓨터공학 수업을 들을 때보다 내가 수업에 더 열심히 참여하게 되고 (내 생각이지만) 나름 새로운 관점을 던지는 것도 같다. 몇번 HCI 라든가 컴퓨터 공학과 컴퓨터 도구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했는데, 다들 호기심 반 뭥미 반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확실히 기존에 공부하던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접하고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의견교환을 하는 것은 굉장한 공부가 된다. 우선은 보다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고,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예를 들면 나는 지능과 전문성을 ‘기술’의 힘으로 향상시킬 수 없을까를 계속 고민하고, 그럴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과 토론을 하면서 놀란 것은, 이 학생들은 기술이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다른 친구들에게는 생소한 관점이었고,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흑인 교수님이 백인-흑인의 IQ 격차라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차분하고 분석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교수님은 또 인종별 지능의 차이에 대한 열린 토론이 금기시 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잘못 이야기를 꺼내면 인종차별자로 치부하고 마녀사냥 분위기가 되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종별 차이가 선천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다루었던 흥미로운 주제들 중 몇가지.
- 전문가에게 있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실력의 일부인가? (뛰어난 능력과 지식이 있지만 전달능력이 부족해서 논문을 잘 못쓰고 발표를 잘 못하면 훌륭한 연구자가 아닌가?)
- 지능의 발달에 있어 유전자 vs. 환경의 역할은 각각 어느정도인가? (이에 따라 교육 정책 방향이나 학생들의 마인드 등이 영향 받을 수 있다 – 난 해도 안돼… 난 A 인종이니까 안돼… 난 B 문화에서 자랐으니까 이런거 못해…)
- 천재는 키워낼 수 있는가? 전문가와 천재는 어떻게 다른가?
- 왜 아시아계 학생들은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이는가? 어떤 문화적 차이가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가? (실제로 여러 데이터를 보면 아시아계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과 동일한 IQ 를 가지고도 높은 성적과 학업성취도를 보인다)
- 긍정적이고 열린 마인드, 믿음 등이 어떻게 지능과 전문성의 계발에 영향을 미치는가?
이제 스탠포드에서의 마지막 과제로 이 과목의 final paper 를 쓰고 있다. 제목은 ‘Computer Technology Meets the Science of Expertise’ 라고 지었다 ㅎㅎ 컴퓨터 기술이 어떻게 사람들의 전문성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컴퓨터 기술은 어떤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양질의 피드백을 줄 수 있고, 다양한 예시를 제공해 주며, 다양한 형태로 스스로와 전문가의 performance 를 시각화/저장/공유/분석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장점이 있지 않을까.
CHI2010 후기
CHI2010 은 HCI (Human-Computer Interaction)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회이다. 지난 4월 10일부터 15일까지 조지아 주의 아틀란타에서 열렸고, 총 2500여명의 사람이 모였으며, 약 300개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번 CHI 는 작년 가을의 UIST 에 이어 (당시 후기는 ‘UIST 학회를 다녀와서’ 포스팅에) 두번째로 간 미국 학회였다. 일상에 와닿는 주제들이 많고 비교적 이해가 쉬운 연구가 많은 HCI 이다보니 CNN, BBC 등의 메인스트림 언론에도 학회에 발표된 몇 가지의 연구가 소개되기도 했다. (이곳 참고)
Student Volunteer
나는 이번 학회에서 Student Volunteer 의 임무를 맡아 일을 했다. Student Volunteer 는 수백불 정도 되는 등록비를 면제받고 20시간 동안 학회가 제대로 굴러가는 데에 필요한 다양한 일을 하는 흥미로운 자리이다. 주로 싼값에 학회에 오는 대신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170여명의 대학원생들이라고 보면 될듯. 의외로 5:1이 넘는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하고, 기본적으로는 추첨을 하지만 커미티 (논문심사 등을 총괄하는, 학회를 위해 임시로 구성되는 연구자 모임) 에 소속된 교수들에게는 공짜 volunteer spot 이 하나씩 주어진다고 한다. 우리 교수님에게 있는 spot 을 선착순으로 냉큼 찜해서 나는 편하게 오게 되었다. 아래의 빨간 옷을 입고 세션 모니터링, 키노트 강연 준비 도우미, 문지기 등의 다양한 업무를 하면서 몸은 꽤나 힘들었지만 그래도 학회가 굴러가는 모습을 어느 정도 속속들이 체험할 수 있었다.
한국사람들
작년 UIST 에는 한국인이 통틀어 7명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무려 100명에 가까운 한국인들이 학회를 찾았다. 미국에서 HCI 연구를 하는 한국인들도 많이 볼 수 있었지만, KAIST를 필두로 한 우리나라 학교와 삼성, LG 등의 한국 기업에서 많은 분들이 온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KAIST 산업디자인과에서만 20~30명 정도의 사람이 온 것 같았다. 서울대 CS 쪽에서도 새로 교수님이 오신 이후 visualization 관련 연구가 활발한 것 같았다. 두 편의 full paper 가 있었다. 하루 점심에 한국 HCI 모임을 했는데, 80명 가량의 사람들이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한국의 HCI
한국에서 오신 교수님/학생들과 한국의 HCI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인상깊었던 점 중 하나는, 산업계에서의 높은 수요를 바탕으로 학교들도 HCI 연구 역량를 보다 키우고 있다는 것. 그러나 아쉬웠던 점은 그 역량이 대부분 디자인과 사용성, 모바일과 UX 등의 일부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 특히 내가 하고 있는 Computer Science 기반의 소프트웨어 툴이나 인터페이스, 그리고 Visualization 에 관한 연구는 한국에서 많이 생소하다고 한다. 분야의 태생적 특성 상 여러 분야의 균형과 조화가 필수적인 HCI 의 한 축인 이른바 system 연구를 하는 학교와 그룹이 보다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구동향
HCI 는 사실 너무 넓어서 어떤 세션은 들어가도 무슨 연구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고, 관심사가 전혀 달라 듣기 힘든 때도 있었다. 수확이라면, 최신연구동향을 알게 된 것과 내가 연구하는 분야가 HCI 전체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갖고 있는가를 보았던 것. 가장 HOT 한 연구 트렌드 두 가지는 input technology 와 social computing 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CMU 박사과정 학생인 Chris Harrison 의 Skinput 은 사람의 몸을 입력 수단으로 활용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장 많은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Input technology 연구는 기존의 터치, 테이블탑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느낌이다. 또 하나 큰 흐름이었던 social computing 은 주로 Facebook 과 Twitter 를 이용한 다양한 발표를 비롯해, 사람들 사이의 정보와 관심의 공유를 촉진하는 다양한 기법들을 제시하였다. Social computing 은 아직도 새로운 연구주제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앞으로 당분간은 흥미롭고 다양한 연구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SIG
다양한 연구관심사에 따라 워크샵 또는 SIG (Special Interest Group) 미팅이 논문발표와 함께 진행되었다. 나는 그 중 관심있는 분야인 End-User Programming SIG Meeting 에 참석을 했다. 이 세부분야의 권위자 및 학생들이 얼추 다 모이는 자리여서 최신연구동향을 알고 사람들 얼굴을 익히기에 좋은 자리였던 것 같다. 재미있었던 점은 SIG 의 진행방식이었다. 50여명의 참가자를 기존 멤버와 새로운 멤버로 나눈 뒤, 두 줄로 서로를 마주보면서 선 다음 (축구경기할 때 양팀 인사하는 것처럼) blind date 방식으로 한 사람당 2분씩 1:1 대화를 나누는 것. 25명의 사람과 각자의 연구관심사에 대해 1시간여동안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
Twitter 시대
바야흐로 Twitter 시대다. #chi2010 와 각 세션 별 해쉬태그와 통해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스마트폰, iPad, 노트북에서 각 세션의 흥미로운 감상과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해쉬태그에 달린 트윗들만 죽 읽어도 어떤 발표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연구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질타(?)를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유용한 정보와 더불어 간단한 debate 가 벌어지기도 했다. 앞으로 이런 흐름은 보다 가속화될 것이고, social computing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분야인만큼 그 활용에 있어서도 앞서나가는 학회가 되면 좋겠다.
후기
엄청난 규모와 다채로운 행사들, 대가, 교수, 학생과 산업계 인사들, 다양한 분야의 최신연구 등으로 가득찬 CHI 학회는 어찌 보면 축제의 장이었다. 저널보다 학회에 좋은 연구가 집중되는 분야의 성격상 사람들과의 교류와 정보와 연구동향 습득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바쁠만큼의 충분한 가치를 주는 학회였다고 생각한다. 이 청중을 대상으로 내 연구결과를 선보일 기회가 여러번! 올 수 있도록 열심히 연구해야겠다.
p.s. 학회의 꽃은 아무래도 사람들과 친해지고 정보를 공유하는 Socialize 가 아닐까 싶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 좀더 자세하게 써볼 생각이다. 지난 UIST 학회 후기를 오랜만에 읽어보니 이 때도 socialize 하는 것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책임 있는 연구
내가 하는 연구가 엉뚱한, 악의를 가진 집단에 의해 악용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정도로 임팩트가 있다는 건 어찌보면 그만큼 좋은 연구였다는 뜻일테지만 ㅎㅎ) 그나마 다행인 것은 HCI 는 태생적으로 연구 결과의 사회적인 함의라든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민한다는 것. 그래서 더 마음에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막상 연구 속에 빠지기 시작하면 보다 윗단에서 판단해야 할 이런 것들은 보이지 않기 시작할 것 같다. 조금이나마 여유 있을 때 이런 생각들을 조금이라도 해놓으면 무의식 중에라도 초심을 잃지 않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가 만든 기술이나 새로운 툴, 인터랙션 기법 등이 사람들이 열광하는 제품에 포함되고 그들의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에 도움이 된다면 큰 보람을 느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좀더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는 연구를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저렴하고 손쉽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일. 논문을 제출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소프트웨어라면 오픈소스 공개를 하고 다른 곳으로 보다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패키징을 하는 등의 추가적인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쓰이지 않는 기술은 결국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한가지 고무적인 것은 HCI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책임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 장애인들을 위한 보다 편리한 기술이라든가, 기술에 대한 접근 제약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affordable 한 기술이라든가, 점점 메인스트림 연구로 올라오고 있는 ICTD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 and Development) 라든가. 결국 굉장히 보수적인듯 보이는 학계나 연구 커뮤니티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회와의 관계, 그 속의 연구자들의 요구와 연구 방향 등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자들이 커뮤니티가 원하는 것에 맞추어 연구를 하는 도 있겠지만, 반대로 커뮤니티 또한 주위 상황에 민첩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분야 전체가 도태되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존폐 자체가 위협에 빠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HCI 에서는 SIGCHI 같은 곳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 지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연구의 깊이는 없이 커뮤니티가 좋아할 것에만 맞추어서 ‘정치적’ 인 연구만 하는 저렴한 연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더 많은 논문이 나올 수 있고 citation 수가 더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런 연구자의 가치는 사회와 동료들의 엄정한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결국, 연구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에는 – 어쩌면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 주위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가는 깊이있고 끈기있는 자세, 그리고 연구의 사회적 의미와 책임을 잊지 않고 항상 주위를 둘러보며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자세가 함께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T자형 인재의 가치는 유효하다.
[참고] T자형 인재에 대해 언급했던 글

